내 나이 70이 넘어서 매주마다 가슴을 설레이며 기다림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에 젖어있기는 정말 모처럼만이다.
한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기다림을 경험한 적은 별로 많지 않다.
옛날 국민학교 다닐 때 소풍가기 전날이나, 설날이나 추석 전날들은 정말 잠을 못자고 기다렸었다. 아마 요새 애들은 크리스마스나 생일 전날들을 그렇게 보내는 모양이다. 그리고 젊었을 때 사랑하는 애인과 약속한 날을 무척이나 기다려졌었고, 좀 나이가 드니까 여행할 때, 즉, 오랜시간 고달프게 여행해서, 마침내 도착한 곳이 웅대하게 펼쳐질 것을 기대할 장소가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캐년이나, 마운트 러시모어의 거대한 대통령 상들일 때다.
내가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열렬한 팬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 팀이 현재 미국에서 랭킹 1위를 달리며 이미 결승전 토너먼트에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남은 2게임에서 한번 져도 홈구장 플레이 특권까지 따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수퍼볼에 올라갈 확율이 제일 높아서 그런지, 아니면 이팀의 쿼러백인 라마 잭슨의 기막힌 재주와 MVP 제일 대상의 연기를 보기위해선지, 주말에 풋볼이 시작할 때만 기다려진다.
요새 나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볼티모어 주변과 전국에 있는 레이븐 팬들이 똑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데, 경기가 시작하는 시간에는 아예 거리가 통통 비어있고, 주변에 가게들도 한산한 정도로 모두가 TV 앞에 모여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맥주들을 무지하게 마셔대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대조적인 현상이 있는데, 내가 사는 우리 한인사회에서는 이상하게 미식 풋볼에 재미를 못 붙이고 반이상이 잘 볼 수도 없는 유럽축구나 멀리 LA야구나 열심히 보려고 할 뿐이다. 물론 한국선수가 한두명이 참가해서 동족의식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 고향은 여기 볼티모어인데, 자기 고향팀이 세계적인 최고의 쇼(세상에서 제일 힘쎈 자들과 제일 빠른 자들의 격돌)인 미식풋볼에서 정상에 우뚝 솟았을 때 그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요새 통계를 들어보면, 한인 노인들의 우울증이 심각하여 다른 민족에 비해 자살율이 제일 많다고 하는데, 그들의 생활방식을 이젠 크게 개선해 가야한다고 본다.
<윤정진 / 메릴랜드 바둑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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