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실 박사와 두 아들의 2002년도 사진.
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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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계기로 미국에 오게 된 것이 벌써 24년 전. 메릴랜드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암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연구 중이던 남편은 삼성종합기술원에서 개시한 바이오 프로젝트를 위해 귀국을 결정했다. 메릴랜드 대학 대학원에서 막 박사과정을 시작했던 나는 미련 없이 남편과 같이 한국으로 귀국하려 했으나, 남편은 내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강하게 권했다.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늦깎이 박사과정 학생으로, 조교로 강의까지 하려니 진땀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중, 2001년에 둘째를 갖게 되었다.
2001년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시작됐다. 그 첫 번째 악몽은 뉴욕 트윈타워를 비행기로 공격한 9.11 테러사태였다. 온나라가 패닉 상태가 되어 곧 3차 대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루머와 동시에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임신6개월로 혼자 물건을 사나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불안감이 컸다.
그 즈음 워싱턴에서는 총으로 무차별 살상을 하는 ‘스나이퍼’ 살인자가 출몰, 차에 개스를 넣으면서도 저격대상이 안 되려고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그 가을에 최악은 토네이도의 공격이었다. 학교 안의 데이케어 센터에서 4살짜리 아들을 픽업하고 차에 탔는데 먼 하늘에서 검은 점이 나타나 점점 커지는 것을 보았다. 워싱턴 지역에서는 드물게 발생한다는 그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 있었다. 주변에 주차된 차들의 유리창들이 폭탄 터지듯이 깨지고, 데이케어를 비롯 학교 안의 건물도 윗 층이 날아갔고, 심지어 차 한대가 기숙사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두 여학생이 죽는 현장에 같이 있었다.
구입한 지 한 달도 안 된 내차도 엉망으로 망가졌다. 창문이 깨지며 유리파편이 등에 박힌 다른 산모도 있었지만, 내 차의 창문들은 깨지지도 않았고, 뱃속의 둘째와 차 안에 같이 있던 첫째 아이 모두 무사했다. 고통스런 그해 9월은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시간들이 되었다.
현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방만했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짐하는 가운데 2020년도 그렇게 역사의 한 장으로 넘어갈 것이다.
<
이정실 / MICA 겸임교수, 프리렌서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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