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교사로 살면서 선진국 교육에 대한 동경이 미국행을 불러 2000년 7월 미국에 왔다. 도미 6개월만에 미국인들과 영어를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들어간 학교. 도무지 빠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거의 벙어리를 면하는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던 그때. 학교에서 일하며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대화가 아닌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토종 한국인으로 느끼하고 들척지근한 음식을 먹으면 목에 버터가 낀 듯 여지없이 음식이 체하곤 했다.
스트레스인지 음식만의 문제인지 거의 소화제를 달고 살았던 어느 봄날.
아들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주었더니 백인 친구 하나가 스시라 하며 좋아하더라는 말에 단무지를 잔뜩 넣은 김밥과 남은 단무지를 도시락으로 쌌다. 보통 때는 정해진 장소에서 2-3명의 교사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일이 벌어진 그 날은 나 혼자 식사를 했고 모처럼의 한국 음식을 혼자 먹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식사를 마치고 막 나가려는데 백인 선생님이 들어왔다.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더니 “무언가 썩은 것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나는 먹느라 냄새를 못 맡았던 것이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는 그녀를 따라 같이 창문을 열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4시경 퇴근하려고 교사들이 있는 방에서 가방을 싸다 보니 낮에 먹다 남은 단무지가 있길래 버리긴 아까워 입에 넣고 돌아서는 순간…
동료 교사가 우리 방 냉장고 뒤에 아마도 쥐가 죽은 있는 것 같다며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냉장고를 끌어내고 호들갑을 떤다. 그제서야 나는 단무지의 냄새를 강렬하게 맡았고, 내가 사랑하는 음식, 단무지는 졸지에 ‘죽은 쥐’가 되었다.
애써 침착하게 나왔지만 차를 타는 순간 문화충격과 인종차별 같은 서러움에 눈물이 쏟아졌다. 미국에 와서 3개월만에 처음으로 한국, 한국인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이제 20년을 그들과 살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얼 먹든, 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다. 20년 동안 미국문화에 무디어진 마음은 오히려 대한민국을 향한 포슬포슬한 사랑으로 바뀐 것 같다.
<
한연성 / 포토맥,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