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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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이민생활은 1989년 9월 23일 시작되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위치한 우리 집은 길 건너에 초등학교와 숲속에 공원이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다. 결혼과 더불어 미국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듬해에 첫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몇 해가 훌쩍 흘렀다.
모국의 부모님과 친척, 친구들을 떠나 새로운 둥지에서 삶을 시작한 지 10여 년 지내는 동안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람은 자신이 목숨을 걸 만한 것을 찾지 못하면 죽게 된다”는 빌 게이츠의 말이 나를 움직여 뒤늦게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가슴에 고여 사무치는 것들을 어떻게든 표현해야 살 것 같았다. 2001년 가을 스프링필드에 있는 워싱턴 문예창작원을 찾아갔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9시 30분까지 1년 동안 열심히 문학 강의를 들었다. 시든 풀이 단비를 만난 듯 문학은 황폐해져 가는 나를 구해준 영혼의 종합비타민이었다. 밤 늦도록 시, 시조, 수필, 소설, 문예사조, 문학개론, 문장 작성법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문학의 여러 장르를 배우는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무엇이든 맨 처음 시도해보는 것은 첫사랑처럼 풋풋하고 서툴러서 오히려 보석처럼 소중한 것 같다. 고달픈 중에도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걸 나는 믿는다.
이듬해인 2002년 11월에 문예창작원을 수료했다. 그 후로도 계속 노력하다 보니 시, 수필, 평론으로 등단하는 보람찬 결과를 누리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문학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워싱턴 문예창작원의 이규태 원장님이야말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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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희 / 연방국토안보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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