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7일은 한국과 일본제국간의 을사조약이 체결된 지 115년째가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몇년간 식민통치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은 “36년”이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1910년 8월 한일합병으로부터 1945년 8월15일 해방될 때까지를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시점부터 일본제국의 실제적 강제통치를 받았고, 왕(순종)은 외형상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은 실제 40년간인 셈이다.
그 40년간 일제강점기의 국권회복을 위해 희생, 헌신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그들의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정부는 실제로 나라를 빼앗겼던 11월17일(을사조약 체결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이날을 ‘순국선열의 날’로 제정했다.
혹자는 “무슨 자랑도 아닌 수치스런 우리 민족의 식민지배 기간을 더 늘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설사 그것이 부끄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직시하는 데서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 대전의 패전으로 나라 전체가 대부분 잿더미로 파괴되었다. 그들은 잿더미가 된 도시들을 오랜 기간 복원해가면서 폭격의 현장과 폐허된 광경을 사진과 설명으로 남긴 후 도시와 거리, 문화재들을 재건축했다. 또한 신축된 건물의 일부분은 폭격 맞은 모습 그대로 남겨두어 전쟁의 참혹함과 부끄러운 역사적 상징을 생생하게 후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교육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 치하 식민통치의 흔적을 곳곳에 일부라도 남겨서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수치스럽다고 그 흔적들과 상징을 모두 없애고 새롭게 바꾸는 것은 잘못된 교육관이다. 최근 들어 일본대사관이나 일본타운 근처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 희생을 기리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다.
이 소녀상이 세워진 후 일본의 식민통치와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희생자에 대한 억울함이 우리 후손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선열들의 순국정신에 대한 교육효과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그들의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들이 전시되기 시작했다.
순국선열은 대략 ‘의병항쟁’이 약 10만명으로 가장 많고, 만주지역의 ‘무장항쟁’이 약 4만명, 국내지역의 ‘항일투쟁’에 가담하여 옥사와 옥고를 치른 선열이 약 1만명으로, 총 15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의 독립공원(서대문구)에는 이들의 넋을 기리는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독립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재필선생동상’ 등이 세워져 그들의 위훈과 정신유산을 기리며 후세에 전하고 있다. 대한을 지키기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처절한 희생은 나라의 존립과 함께 영원히 가는 민족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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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 독립운동가 이수정 선생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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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회에 나라를 위해 목숨과 재물을 희생하셨던 순국 열사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신기한것은 6.25때 남한을 도와줬던 미군과 유엔군에게는 눈물겹게 고마와들 하면서 이렇게 일본항쟁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같은 동포들에게는 별 치사가 없다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