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절 한국에서 하던 일식집 사업이 힘들어지자 남편은 아이들 셋 교육문제도 그렇고 한국에선 살기 힘들다고 미국 이민을 택했다. 2년의 수속 끝에 영주권을 받고 2002년 6월에 버지니아 애난데일에 도착했다. 작은 아파트를 렌트하고 여름방학이라 아이들과 집에서만 지냈다. 영어도 안되고 모두 낯선 곳이라 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났다.
하루는 남편이 드라이브 가자고 해서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아이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무작정 떠났다. 한 시간 반쯤 달렸을까 갑자기 두통이 나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여행을 못할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런데 되돌아오다가 길을 잃게 되었다.
그 시절엔 네비게이션도 없고 지도책을 준비해 다녔어야 했는데 그걸 몰랐다. 그저 한국에서 자동차 몰고 다니던 습관대로 갑자기 준비 없이 드라이브에 나섰다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큰 도로에서는 사람도 만날 수 없었고 겨우 한 백인이 지나가길래 버지니아를 물으니 말도 안 통하고 그 남자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한참을 달렸다. 2시간이 지나도 버지니아 워싱턴 지역 표지판이 안보였다.
다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버지니아를 물으니 맙소사 지금 왔던 길을 되돌아가라고 손짓한다. 그렇게 또 2시간쯤 오다가 주유소에 들렀다. 나는 남편에게 버지니아 지역이 넓으니 버지니아 애난데일 가는 길을 물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주유소 직원은 애난데일을 모른다고 한다.
밖은 어두워지고 난감하여 서성이고 있는데 주유소 상점안으로 들어 왔던 한 흑인 여인이, 우리 가족이 길을 잃은 걸 눈치챘는지 자기가 애난데일을 아니까 자기 차를 뒤따라오라고 한다.
깜박이를 켜고 그녀 차를 한시간 쯤 뒤따라 갔을까 어느 지점에 이르니 그녀가 속도를 줄이고 창밖으로 손짓하며 우회도로로 빠져나가라고 했다. 495 벨트웨이 애난데일 표지판이 보였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고 우리는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다.
너무나 고마운 그녀. 아마도 길을 잃은 우리를 위하여 일부러 메릴랜드 지역에서부터 앞장서 운전해 준 것 같았다.
지금도 495 벨트웨이에서 애난데일을 빠져나올 때면 그녀가 손짓해 주던 그 모습이 떠오르고 그 따뜻한 마음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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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숙 /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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