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명암이 나라마다 극명하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가장 앞서가는 나라는 자체 개발한 백신을 보유한 미국과 영국이다. 미국은 화이자, 모더나, 존슨 & 존슨을,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를 개발했다. 생존을 위한 자국 이익은 늘 한 발 앞서 챙기는 이스라엘도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한국은 K 방역의 자긍심이 지나쳐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단가가 좀 비싸더라도 화이저 등을 미리 확보해 뒀어야 했다. 개발된 백신을 팔아야 하는 제약회사로서는 개발 초기, 잘 사는 나라인 한국에도 먼저 구매의사를 타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때는 뭘 몰랐다고 해야 할까. 방역 때문에 경제가 죽을 쑤게 되면 견딜 수 있는 장사가 없다.
인도는 지옥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국경에서 무력 충돌을 겪고 있는 중국도 국경을 맞댄 인도의 상황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바이러스에 국경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도를 제외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등 인접 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백신 지원에 나섬으로써 자국으로의 전파위험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은 인도에 아스트라제네카 2,000만 회분을 풀기로 했다. ‘인도적 차원’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 곧 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도적 차원이었다면 남미 등 지원했어야 할 나라가 이미 많았다.
중국을 견제하는 강력한 안보 동맹국으로 부상한 인도에 보내기로 한 아스트라제네카는 사실 미국서는 필요가 없던 백신이었다. 미국서는 아직 승인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재 놓고 있었다. 존슨 & 존슨이 예정대로 생산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했다는 것이 유력한 설명이다. 같은 방식으로 개발된 두 백신은 1회로 접종이 끝나는 데다, 효능과 보관 조건 등도 비슷하다.
미국으로서는 ‘부자 몸조심’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멕시코 대통령이 공개 구애를 해도 등을 돌리다가 한참 후 400만회를 인접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영국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내 생산분을 다른 나라에 판매할 수 없었던 것은 미국의 국방물자법(Defense Products Act)에 의해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승인이 없으면 생산품의 해외 유출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으로서는 어차피 해외용이었다. 아직 승인도 나지 않은 백신을 너무 오래 쌓아 두면 곧 유효기간도 다가온다. 미국이 확보해 둔 다른 백신의 양도 이미 충분하다. 인도에 백신을 푸는 것은 이런 상황이 두루 고려됐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백신 지원은 철저하게 자국의 정치경제적인 주판을 튕겨본 뒤 이뤄질 것이다.
백신 접종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또 한 나라는 작은 산악국가인 부탄이다. 네팔 동쪽, 중국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부탄은 이달 초에 백신 접종이 가능한 거의 전 국민이 최소 1회이상 백신 접종을 마쳤다고 한다. 18세부터 104세의 국민 47만여명 중에서 93%가 지난 4월8일 현재 최소 1회 이상 접종을 한 것이다.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은 불과 2주만에 이뤄졌다. 전 세계에서 세이쉘 군도를 제외하면 가장 접종률이 높은 나라라고 AP 통신은 전했다.
이번 팬데믹 이후 부탄에서 나온 코로나 감염자는 921명, 사망자는 한 명이라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백신 접종까지 거의 완료 단계니 부탄은 코로나 청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백신을 새치기 접종해 빈축을 샀던 페루의 전 대통령은 접종을 한 지 6개월 뒤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스타일을 구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난해 11월 부패 의혹으로 탄핵된 그는 그보다 한 달 전 부부가 함께 중국산 백신을 은밀히 접종한 것이 드러났다. 대통령 말고도 외교장관과 보건장관 등도 새치기 접종이 밝혀지면서 경질돼 페루에는 ‘백신 게이트’가 강타했다고 한다.
코로나 백신 백태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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