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내 삶에 가장 부족했던 건 ‘감사’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예술가의 길을 가기 위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예술고등학교를 다녔다. 여기저기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인 터라 한 반에 있는 아이들은 친구이면서 경쟁자였다. 특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실기고사 후에 흐르는 냉랭한 기류는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들의 반복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나는 마른 편의 기량을 인정받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의 몸은 넉넉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걷잡을 수 없이 몸무게가 늘어갔다. 더군다나 경쟁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분위기에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웠고 이런 스트레스는 폭식을 불러왔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학창시절은 매일매일이 고통이었다. 공연 때가 되면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물만 먹고 다이어트를 하는 혹독한 상황에 내몰렸고 공연이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몸무게 때문에 좌절을 반복했다. 그 이후로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무사히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었고 그 이후엔 자연스럽게 몸무게가 줄어 나의 몸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도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내 스스로 내 몸이 ‘뚱뚱하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고 내가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된 후에도 쉽사리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셋이나 낳고 키우다 보니 배짱 아닌 배짱이 생겼는지 “좀 통통하면 어때?” 난 ‘나’일 뿐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 남의 시선과 남의 의견으로 자신을 만들어 간다. ‘나’ 답게 산다는 기쁨을 조금씩 알게 된 후로 나의 튼튼한 다리도 달리 보이고 나이 들어 하나씩 늘어나는 눈가의 주름도, 내 흰 머리카락도, 내 뱃살도 다 이쁘게 보인다. 이로써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했고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감사, 일이 잘 안 풀리면 안 풀리는 대로 감사하며 산다.
또한 나의 오랜 생채기였던 고등학교 시절의 아픔은 내 제자들을 더 잘 이해하고 잘 가르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쓰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끝으로 글솜씨가 부족함에도 13주 동안 이 귀한 지면을 허락받아 나의 소소한 삶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의 삶은 감사할 수 있을 때 행복한 것 같다.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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