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대학원에 지원하면서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썼었다. 나는 가설을 세워 실험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그 해석에 기반해서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다음 실험을 계획하는 과정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고. 신기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름없이 이 일련의 과정이 좋다.
나의 현재 연구방법 중 하나는 실험쥐의 뇌의 특정 부위에 형광물질을 발현시키고 특정 행동시에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요즘 좋은 실험쥐가 잘 안만들어져서 형광물질을 주입하는 뇌의 좌표나 운반체도 바꿔보고 수술 과정에 잘못이 있나 하나씩 점검하는 중이다. 안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이런 끊임없는 문제 해결은 연구에서 필수적이며 실제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잘 만들어진 쥐로 가설을 따라 실험했을 때 특정 조건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면 의미있는 과학적 발견을 하는 짜릿한 순간이다. 결과를 여러 각도로 분석하여 해석하고 관련 문헌도 더 공부해본 후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같은 쥐를 가지고 다른 조건에서 다른 행동을 보거나 새로운 실험쥐를 만들어 다른 뇌 부위의 활성화를 보기도 한다. 이 모든 연구 과정은 한번에 딱 한 걸음씩만 내딛을 수 있다는 게 큰 특징이다. 열쇠고리의 사슬이 서로 연결되듯이, 하나의 문제 해결이나 하나의 과학적 발견이 있어야만 이를 바탕으로 그 다음 고리를 이을 수 있다.
사실 과학 연구는 외적 보상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직업이다. 연구자는 다른 전문직에 비해 안정된 지위와 물질적 보상이 쉬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많은 나라에서 현실이다. 그래서 순수한 꿈을 안고 길에 들어선 명석한 과학도들 중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다 더 나은 길을 찾아가는 이들도 많다.
학부 때 기숙사에 배달오신 택배 기사분이 땀을 많이 흘리시길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다 드린 적이 있다. 계단에 앉아 잠시 나누었던 대화에서, 햇병아리였던 나는 과학이란 자연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진지하게 대답해드렸다. 연구 여정을 좀더 걸어온 지금 하나 덧붙이자면, 그 언어는 한번에 딱 한 음절씩만 번역할 수 있다. 결국 과학자란 그 과정을 즐거워하기에 기꺼이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는 매년 이맘때, 아마도 가장 크게 기뻐하며 또한 격려받고 있을 모든 과학자들께 박수를 드린다.
<장희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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