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웃고 있다. 36년 간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영면의 처소로 옮긴 곳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부인과 자녀와 손자의 이름으로 묘비가 세워졌으니 이 세상에 나와 숙제는 마치고 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그에 대한 이미지는 ‘성실’이다. 제대 후, 첫 직장에서 11년을 근무하는 동안 거의 매일 가장 일찍 출근했고 밤늦게 퇴근했다. 심지어 이민이 결정되어 미국으로 출국하던 날까지 이미 사표를 제출한 회사에 나가 무보수로 일하고 온 사람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에 취업 비자를 받고 올 수 있었던 이유도 그의 성실함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막 회사를 차린 한 창업주가 그가 다니는 회사를 방문했을 때, 그는 밤을 새워 책 한 권 분량의 리포트를 작성했다. 신생 회사라 인재가 필요했던 창업주는 그의 성실함에 매료되어 미국에서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다. 입사할 때, 십여 명이었던 회사 규모는 25년이 흐른 지금, 주식시장에도 상장되었고 반도체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이 회사에 처음 왔을 때부터 COVID-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시작되기 전까지 초지일관 새벽에 출근했다. 그에게는 공휴일도 일요일도 없었다. 365일 눈만 뜨면 회사로 향했다. 일이 곧 취미였다. 하고 있는 일에 장애가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눈빛이 빛났다. 거의 달마다 가는 중노동의 해외 출장도 마다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 일에 도전했다. 여러 개의 특허도 내어 회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덕에, 마침내 한국인으로서 기술부사장인 엔지니어링 펠로우까지 되었다.
입사한 지 25년을 넘기고 한달도 안 되어 63세의 나이로 그는 갔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회사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고 싶어 했다. ‘T.M KIM MANUFACTURING BUILDING’ FORMFACTOR라는 회사를 지독히 사랑한 그의 진심이 통한 듯 새로 증축하고 있는 건물에 그의 이름을 주는 안이 공모를 통해 채택되었다. 그의 이름 T.M KIM은 죽어서도 계속 회사 내에서 불리게 될 것이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뒷배경이 든든한 것도 아닌 평범한 시골 청년이 ‘성실함’ 하나로 타국에 와서 이름을 남기고, 가족은 물론 그를 아는 많은 동포에게 자부심을 주었으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장한 삶이었다고 칭찬할 만하다.
<김희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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