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나 다니는 저수지가 있는 숲 네거리에 아기사슴 그림이 있는 노란 팻말이 나붙었다. 자세히 보니 아기사슴이 “천천히 가 주세요 우리 엄마가 여기를 지나 다녀요”라고 쓰여 있었다. 문득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스티브는 4년 전 쯤 한국인 아내를 잃고 아내와 다니던 우리 교회를 혼자 나오는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젊어서 소셜워커로 일을 했던 그는 메츠 팬이었고 나와 아내는 양키 팬이어서 우리는 언제나 야구 얘기와 지난 한 주 동안 얘기를 나누던 좋은 친구였다.
초여름쯤 되었을까, 그 날도 야구와 전 주일에 있었던 아기 사슴 얘기를 들려주었다. 엄마와 아기로 보이는 두 마리의 사슴이 바로 이 숲 근처에서 내가 다니던 도로를 가로질러 가다가 내 차를 보고는 황급히 저수지가 있는 아래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곳에는 어른 가슴높이의 펜스가 높이 둘러 처져 있었는데 어미는 가볍게 훌쩍 넘어갔지만 아기사슴에겐 어림도 없이 높아 그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건너편 엄마만 쳐다볼 뿐 둘은 서로 마주보며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뒷차들을 보내고 차를 세운 뒤 그들을 도우려고 뛰어 가니 아기 사슴은 자기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펜스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른 잡아들어 넘겨야겠다 싶어 아기 사슴의 배를 움켜잡는 순간 화들짝 놀란 사슴이 온 몸을 뒤틀더니 순식간에 펜스의 그 손바닥 반만한 틈을 빠져 나가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곧바로 어미 사슴에게로 달려갔다.
잠깐 사이에 자기 품으로 돌아온 새끼를 본 어미 사슴은 그 자리에 선 채 잠시 나를 바라보며 움직이지를 않았다. 마치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하는 눈빛이었다. 가슴을 졸이며 듣고 있던 스티브가 “You are a good man “하면서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소셜 워커로 평생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 왔던 그가 그렇게 기뻐하며 좋아하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코로나로 더이상 교회에서 만날 수 없어 몇 주가 지난 어느 일요일 우연히 전화한 날이 마침 그의 생일이어서 우리는 오랜만에 우리들의 젊은 날 이야기며 많은 옛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그것이 나와 스티브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2020년 6월 스티브는 아무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남기지 못한 채 그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가을바람 불고 여름은 갔다. 그리고 스티브도 갔다. 그러나 스티브는 내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좋은 친구로 그리고 그리운 친구로 언제까지나 나의 가슴 속에 깊이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
주동천/노스베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