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감정 하나 털어버린다. 이십오년 전, 스탠포드 대학 근처에서 어느 여자분에게 학교 가는 길을 물었다. 그녀는 선뜻 자기를 따라오라며 차에 올랐다. 두 블럭쯤 직진한 뒤, 그녀는 차를 세우고 우리 차로 다가왔다. “나는 여기서 좌회전할 거예요. 이 길 따라 조금만 더 가면 학교 입구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떠나려는데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점심값 좀 주고 가세요.” 길 안내를 했다는 명분으로 돈을 요구하니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강탈당한 것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그녀는 잘 차려입은 옷차림이며 자동차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노숙자도 아니었고, 자기의 가던 길을 수정하여 일부러 돌아온 것도 아니다. 길을 물은 장소에서 “그길로 쭉 가세요” 하면 될 것을 굳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더니 이런 속셈이 있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우리는 한동안 움츠러든 미국 생활을 했다.
그러나 살면서 보니 미국에는 배려심 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난 어느 청년 덕분에 난감한 순간을 모면했다.
장을 보고 나와 자동차 시동을 켰으나 ‘들들들’ 소리만 날 뿐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염치 불문하고 근처에 있는 한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데 왜 그런지 봐주실 수 있나요?” 아들뻘되는 그 청년은 선뜻 키를 받아 시동 걸기를 시도했다. “아, 배터리가 나갔어요. 제가 점프업을 가지고 있으니 도와줄게요.” 그는 점프업을 가져와 내 차에 연결하려고 했지만, 선이 짧아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싫은 기색 없이 후진과 전진을 거듭하더니 거의 닿을락말락하게 내 차 앞에 자기의 큰 트럭을 대었다. 다행히 한 번의 점프업으로 내 차의 시동이 걸렸다. “혹시 모르니 곧장 집으로 가세요. 한 번 시동을 끄면 또 시동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는 나의 사례를 거절하며 친절하게 후일까지 걱정해 주었다.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뭇사람과는 달리 곡예 같은 운전을 감행하면서까지 도움을 준 그 청년이 진정으로 고마웠다.
올해는 홀로 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많은 분의 도움과 위로를 받았고, 지금도 그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는 불쾌한 일은 바로바로 잊고, 모든 감사한 일은 백골난망하여 보은에 힘쓰면서 살아가야겠다.
<김희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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