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재봉틀을 다룰 줄 몰랐다. 취미도 없는데다가 손재주도 없어서, 손만 대면 곧장 실이 엉키고 움직이지 않게 되곤 했다. 그래서 나와는 무관한 일로 여기고, 그쪽으로는 담을 쌓고 일생을 살았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퀼트클럽(Quilt Club)이라는 데를 나가게 되었다. 가보니 거기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고, 그럴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다며 방법을 알려주어, 어느덧 나도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미국 할머니들이 모이는 그 클럽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자기 하고 싶은 바느질을 하거나, 베갯잇, 또는 애기 이불 같은 것들을 단체로 만들어 불우이웃을 돕는 기관에 기부하기도 했다. 한 번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서 ‘Pillow Case Dress’라는, 마치 베갯잇같이 네모로 간단하게 만들고 목부분에 끈을 넣어, 목에 걸어 입게 만든 옷들을 많이 만들어 보낸 일도 있다. 그 자상한 선생님들의 지도 덕에 나도 옷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가방을 만들어 친지들에게 선물하기도 하는 등,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린 손녀들이 내가 만든 빨간색 파란색 코트를 입고, 앙상블 베레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보는 기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몇 년 전부터는 여름 방학을 이용해 손녀들을 상대로 ‘Sewing Camp’를 몇 번 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가방 같은 것을 만들어 보던 큰 손녀가 너무도 재미있어 한다. 그 뒤로는 혼자서 인터넷을 보면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하더니, 창의성이 있어서인지 어느새 나보다 높은 수준이 되었다. 본 없이도 옷을 만들고 고치기도 하며, 틱톡 같은 것을 보면서 배워, 나는 그렇게도 쩔쩔 매던 지퍼도 처음부터 쉽게 단다. 재봉틀도 아직도 설명서를 봐야 하는 나에 비해 척척이다.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이런 건가 싶다. 이제는 할머니를 찾지 않고도 혼자 다 하고 있으니, 자유롭고 독립적이 되었고, 재봉틀은 어느샌가 내 방에서 손녀방으로 옮겨져 갔다. 이제는 장래 꿈도 패션 디자이너란다.
앞으로 손녀가 바느질을 하거나 재봉틀을 쓸 때마다, 자기에게 바느질 ABC를 제일 처음 가르쳐준 이 할머니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일까?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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