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는 신학교를 나온 그분이 사신다. 누가 보아도 얼굴에 “나는 착한 사람이요~”라고 씌여 있는 분! 그냥 보기에 진정 부담이 없는 편안한 얼굴로 칠순 중반쯤이시다. 그분의 구슬픈 속사정은 이렇다.
페인트 일을 하며 성실히 살아온 그가 은퇴 후에 한국에 몇 차례 다녀오면서 소위 ‘쏜다’는 것을 하고 싶은 염원이 생겼다. 친지들은 한국에 가면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건네준다. 놀라 자빠질 일이다. 마음대로 먹고 쓰고 타고 하라는 것이다. ‘나도 한국 사람들을 놀래켜 줄 멋진 호기를 부려 보겠다’는 희망으로 아내 몰래 부스러기 잔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추가 일로 현금을 손에 쥐면 돌아오는 운전 중에는 콧노래가 나오고 기마이(氣前,きまえ) 쓸 상황을 그려보면 은근히 사는 맛이 났다. 그래 기다려봐, 멋지게 보여주리라!
그는 아내가 가지 않는 동선을 파악하여 현금 숨길 장소를 물색하였다. 마당 펜스를 따라 줄줄이 서 있는 키 큰 유지니아 나무 밑. 벽돌 몇 개를 빼서 땅을 깊숙이 팠다. 비나 물이 들세라 유리병을 묻고 거기에 지폐를 넣었더니 곰팡이가 생겼다. 플라스틱 통으로 바꾸어 조미 김 통에서 꺼낸 실리카겔 방습제를 넣고 밀봉을 했지만, 냄새가 나고 돈이 눅눅해졌다. 지폐들이 쌓이니 거금을 들여 한국산 길쭉한 숯을 사서 신문지로 싸고 개미를 쫓기 위해 나프탈렌을 넣고 고슴도치를 막기 위해 주변에 철수세미도 잘라 넣었다. 목표했던 만 불이 되었다. 텐 따우전 달러. 꿈의 돈. 참으로 돈은 보는 맛도 좋은 것이란 걸 알았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지진이 걱정되었다. 땅이 갈라져 땅속으로 쏙 돈이 들어갈 경우 빼내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비닐로 새끼 꼬듯이 길게 줄을 만들고, 불기를 대어 살짝 녹여 봉지를 붙였다. 지폐를 말아 넣어 땅속 깊은 곳에서도 잡아당기면 낚시하듯 졸졸 따라 올라오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영문 이름과 한국 이름, 주소와 사진 한 장도 넣어 두었다. 그리고 흙을 잘 덮어주고 낙엽을 수북이 뿌렸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진리를 무시한 대가로 며칠 전 아내가 낚시질을 해버렸다. 그곳에만 높이 쌓인 낙엽을 치우다가 뾰쪽 나온 줄을 쑥쑥 잡아당겨 탄로가 났다. 비난을 퍼붓던 아내는 매일 마당의 벽돌을 뒤적인다.
바로 그 한국 가는 날이 3월 30일! 텐 따우전이 없이 그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세상에서 배운 건 허무뿐이라며 억울해 하는 남의 슬픈 이야기를 난 웃으며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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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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