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어릴 때 여름방학 동안 매주 요세미티와 투올러미(Tuolumne)로 캠핑과 암벽 타기를 떠났다.
요세미티에 가면 캠프장 입구에 곰이 출몰하니 음식물을 절대 차에 남겨 놓지 말고 베어 박스에 넣으라는 경고문이 있다. 블랙 베어가 차 문짝을 뜯어낸 사진도 홍보용으로 붙여 놓기도 했다.
하루종일 암벽을 타고 나서 아이들과 강에 가서 헤엄을 치고 놀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저녁으로 카레를 만들고 있는데 30피트 쯤에 블랙곰이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곰이다'라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캠프장 사람들이 웅성웅성 "어디 어디 거기 저쪽.. " 옆 텐트 사람들도 나무 숲 사이로 곰을 보려고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려고 살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번뜩 나의 뇌에서 신호가 왔다. 위험 위험해! 문득 곰을 보면 큰 소리를 내고 절대 뒤돌아 도망가지 말고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난 용감하고 씩씩하게 냄비를 번쩍 들고 큰 수저로 마구 두드렸다. 땅 땅 땅 땅… 그 소리에 놀란 곰이 쌩 하고 도망을 가는데 말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육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야생 곰 구경을 놓친 걸 아쉬워하며 시끄럽게 냄비 두드린 사람이 누구야 하는 그런 얼굴로 나를 째려보는 듯했다.
불과 20피트 남짓 가까이 다가온 호기심 많은 블랙곰을 용감하게 쫒아 버린 나는 순간 멋쩍어서 번쩍 든 냄비를 슬그머니 내려놓으며 씨익 웃어버렸다. 남편도 옆에서 내 모습이 우수꽝스러웠는지 껄껄 웃고 있었다 . 보통 곰들이 사람 많은데 잘 안 오는데 너무 오버한 것 같아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약간 억울하고 서운한 맘이 들어 "자기가 나보고 곰 보면 뭐든 두들기라고 했잖아" 했더니 "잘했어 잘했어, 문제없어”라며 나를 다독였다. 이렇게 곰 소동은 나로 인해 짧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곰 소동 후 우리 가족은 카레밥을 함께 먹으며 낄낄 거렸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카레밥을 해 먹을 때면 요세미티 캠핑장에서 곰 소동을 버린 내 모습이 무슨 코미디언 모습인 양 겸연쩍게 떠오르곤 한다.
<
이은경(산타크루즈 코리안 아트 갤러리 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