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각장애인이 물었다. “네 앞에 투명한 병 두 개가 있어. 한 병에는 소금물이 들어 있고, 다른 한 병에는 설탕물이 들어 있지. 아마 두 병은 똑같아 보일거야. 그런데 네가 사람들에게 투명한 두 병에 관해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면 어떻게 표현할래?” 때로 예술은 시각의 문제 그 너머에 존재하며, 무능(disability)이라고 여겨지던 것에 가능성(ability)이 있다고 믿게 한다.
그의 소리를 처음 만난 건 10여년 전이다. 심금을 울리는 김재원의 그것과는 달리, 마음을 미소짓게 하는 옛 선지자의 어진 심상을 그리는 듯 깊고 맑게 올라오는 소리에 싸르르했던 기억이 있다. 시신경 위축증으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문종석에게 소리는 세상이다. 막아서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며 다가오기도 하는 소리들 중에 그가 가장 가까이 두고 싶었던 소리는 대금. 중학교 2학년 때 단소반 선생님이 불어 주시던 대금을 듣고,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도 있나 싶어 단박에 반해 버렸다고 한다.
그후 종석씨는 대금과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의 열 번의 노력이 다른 사람의 한 번과 같기 때문이다. 악보를 볼 수 없는 그는 귀로 소리를 만지고 쓰다듬으며 곡을 배운다고 했다. 연주를 들려주면 녹음을 해서 반복적으로 들으며 익힌다.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소리들, 똑같은 모양의 녹음테입이지만 똑같지 않은 내용을 용케도 구별한다. 그렇게 문종석은 성실함과 실력으로 어엿한 관현맹인 전통예술단의 대금 연주자이자, 숙련된 기량을 지닌 국악인이 되었다.
대금은 한을 녹이는 자연의 소리라고 한다. 임권택 감독 ‘서편제’의 송화와 동호가 다시 만나 한을 푸는 장면에서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은, 가슴을 파고드는 대금의 소리였다. 진중함과 기품이 멋스러운 대금은 저음에서 나오는 구슬픈 가락과 높은 음역대에서 나오는 호방한 선율이 어우러지며, 세상은 이렇게 서로 조화롭게 사는 거야 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소리는 경계를 허물고, 닫는 곳은 결국 마음이다.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을 밝히려 종석씨는 대금과 하나가 되어 간다. 기울거나 눌리지 않고 장장하게 울려퍼지는 소리는 그가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방법, 앞을 볼 수 없어도 살필 수 있는 소리로 음악을 만들어 가는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문다. 관현맹인 문종석은 그렇게 소리로 희망을 빚으며 그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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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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