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올바니에 살 때 자주 찾았던 도서관이 있었다. 그 도서관 뜰 옆으로 큰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 한가운데에는 조각품 같은 분수대 하나가 늘 외롭게 물줄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가을이면 분수대 주변 건너편의 성성한 갈대숲이 바람에 쏴아쏴아 휩쓸리곤 했었던 그 도서관. 붉은 벽돌 건물 아래로 빨간 샐비어(salvia) 꽃이 눈물겨웠던 어느 가을, 분수대 호숫가 뜰에 잠시 와 앉았던 세 마리 캐나디안 철새가 어느 날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문득 9월도 함께 떠나갔음을 깨닫고 쓸쓸함을 표현했던 시, ‘분수’를 소개한다.
9월은 그렇게,/ 도서관 앞 호숫가에 와 앉은/ 세 마리/ 캐나디안 거위와 함께/ 잠시 머물다 떠났다// 이름모를 나뭇잎 사이로/ 성성한 갈잎 줄기 사이로// 빌딩 창문마다 번쩍이며/ 종일 일렁이다 떠난/ 9월의 빈 자리// 붉은 벽돌담/ 샐비어는 성긴/ 햇살을 움켜안고/ 꺼이꺼이 울음을 토하는데// 호수 한가운데/ 홀로 선 분수대는// 저리도 하릴없이// 물 위에/ 물을 뿜고 또 뿜는가
그러나 하릴없이 물 위에 물을 뿜는 분수대에서 느꼈던, 삶의 덧없음(fleeting life)은 거기서 그렇게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면 떠났던 철새는 또다시 되돌아올 것이고, 성성한 갈대는 초록빛 새싹으로 다시 움을 틔워 낼 것이며 샐비어도 붉게 피어나 다시 한여름을 활활 태울 것이다.
그렇게 거듭거듭 봄이 새 생명으로 태어나고 줄기찬 여름으로 머물다가 가을로 연소하고 겨울로 동면하는 삶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신비하게 이어가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철새보다 갈대보다 그리고 어떤 꽃보다 귀한 우리 인간들에게 단 한번 주어진 아름다운 삶은, 소중하게 아끼고 가꾸며 살아볼 만하다고 분수는 그렇게 물 위에 물을 뿜고 또 뿜으며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Mariupol) 스틸 공장의 붕괴로 러시아의 포로가 된 우크라이나인 2,439명의 기약할 수 없는 생사와, 프랑스 노예 소유자들에게 바쳐야 했던 지속적인 보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한 삶 속에 던져진 아이티(Haiti)인들과, 최근 아프가니스탄을 뒤덮은 지진으로 1,000명 이상의 생명들을 앗아간 그 참담한 페허의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저들의 통곡소리가 우리와 무관하다고 쉽게 간과해 버릴 수 있을까.
다함께 서로 행복을 나누며 나만이 아닌 다른 이들의 안녕을 위해 나도 지구의 한 코너에서 그 분수처럼, 자신과 세상을 일깨우며 부단히 살아가고 싶다.
<
김찬옥(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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