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가르치는 일이 업인 나는 자연히 언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언어에서 소통의 도구, 그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곤 한다. 한 예로 최근 나는 한국사람들이 흔하게 쓰는 속어들이 우리가 보통 쓰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가져 온 속어는 거의 욕 수준인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인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머리를 스치는데 이 말이 떠올랐다. 나는 이 뜻밖의 조합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정말 맞다!”고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이 부분은 바로 그 사람의 뿌리(origin) 및 살아온 내력, 즉, 개인사를 암시한다.
이 속어를 시작으로 새로운 각도에서 깊이 있는 확대해석이 가능한 속어적인 표현들을 몇 개 더 발굴하게 되었다. “알고 보면 다 불쌍하다”라는 말도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라는 교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도 알고 보면 말 못할 애처로운 사연이나 문제 하나쯤은 있고, 아무리 밉거나 나쁜 사람도 그 배경을 알고 나면 연민과 동정심으로 다시 보게 되는 경우에 들어맞는 표현이다. 그 다음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은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아라.” 네가 아는 것이나 경험한 게 다가 아니다. 그걸 기준으로 새로운 것을 판단하면 안 된다. 네가 몰랐던 너보다 한 수 위인 사람들과 세계가 있어.
다음으로 “있을 때 잘 해.” 가까운 사람한테서 대접받으려고 농담조로 하는 말이지만 무엇이든지 없어 봐야 그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는 일명 “희소성의 가치”도 일깨워준다. 나처럼 갑자기 건강을 잃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있을 때 잘 해야 하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교적 최근에 유행한 “꼰대, 라떼는 말이야”는 단순히 어떤 특정 기성세대 집단을 비꼬는 말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갑의 위치에 자동적으로 서게 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거라고 유추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썰을 풀다보니 친숙하게 써온 속어들이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성 말장난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쌓아온 인생경험에서 우러난 지혜가 담긴 질박한 그릇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편견없이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본다면 이렇게 화려하지도 고상하지도 않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도 우리가 통찰한 인생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혜선(몬트레이 국방외국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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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나 도로보데스....알고 보면 다 불쌍하다....인생은 요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