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수감사절에는 모처럼 아들네 식구들이 다녀갔다. 몇 년간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 되면 아이들이 못 와서 딸네 식구들과 조촐하게 보냈었는데 올해는 돌도 안된 둘째 손녀까지 온 식구가 내려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넷이나 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으앙~~” 하면 한 녀석이 뭘 달라 떼를 쓰고, 달래고 나면 다른 녀석 둘이 서로 실랑이를 벌인다. 이럴 때 할머니가 누구의 편을 들면 안된다. 엄마들을 부르면 우리 딸과 며느리가 해결한다. 그러다 조용하다 싶으면 둘째 아이들이 낮잠 시간이란다. 감사절 음식 준비로 엄마들은 바쁘고, 아빠들은 아이들을 돌보며 식구가 함께하니 집안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 부모님이 오셔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정성껏 준비한 풍성한 식탁을 마주할 때는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우리 부부만 먹기에는 늘 허전하고 넓었던 식탁이 꼬마들까지 한몫하여 좁은 느낌이 들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한 해 동안 지켜 주심을 감사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밀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데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먼 곳에 있던 가족들이 만나고 형제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런데 각자의 가정에 규칙이 있고 교육의 방법이 있다 보니 서로 다른 점들도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용서가 되고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아빠, 엄마에게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좀 받아주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안된다며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 받아주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오면 버릇이 나빠지는 거라고 한마디 한다.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오면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준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안된다고 할 수 없다. 눈웃음에 넘어가고 뽀뽀 한 번에 마음이 녹는데 어떻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엉터리 아빠 엄마, 착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손주들을 보며 배우고 느끼는데, 이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특권이 아닌가.
그렇게 시끌벅적하던 집안이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자 다시 조용해지고, 떠난 자리가 더 허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따로 각자에게 맡겨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난 후, 또 같이할 때 기쁨과 즐거움도 배가 될 것이다. 그 기쁨의 시간들을 기대하며 일상으로 돌아가 밀렸던 과제물을 펴고, 학생들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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