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상복(사진)

2014년 연변 과기대 상경학부 계절학기 전상복 교수와 학생들,
”사랑의 터키 한미재단이 37년이나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하나님이 지혜와 믿음, 은혜를 주셔서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다. 지금도 터키 전달시즌이 다가오면 하루 서너 시간 밖에 못자면서 일해도 피곤하지 않다. 건강을 주셔서 열심히 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한다.
“1966년 미국에 유학온 후 내가 받은 사랑과 혜택에 감사하며 나누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래서 불우 이웃을 돕자는 마음으로 재단을 만들었다.”고 재단의 설립 동기를 피력한다.
그는 1936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6.25가 나자 대구로 피난 가서 영국군 하우스 보이로 취직했다.
고학을 하며 중학교 학생지도 입주가정교사를 했는데 운이 좋아선지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해 다들 좋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전선생은 입학시험의 귀재’라는 소문이 났다.
경희대 경제학과, 1963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후 경희대 경제학과 강사를 지냈다.
미시건 주 웨인 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디트로이트에서 살았다. 공부를 마친 2년후에 뉴욕으로 왔는데 뉴욕증권거래소에서 2년간 일하며 2차 승진, 증권분석가로 보냈다.
부동산 에인전트, 헬스 앤 뷰티 JMS 회사 사장, 1972년 뉴욕한인회 이사, 1976년 스태튼 아일랜드 한인학교 초대 이사장으로서 28년간 한인 2세들에게 한국언어와 역사를 가르치며 정체성 교육을 시켰다. 이때 주변에서 6.25참전 용사를 만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 외 극동 아시아방송국 주미후원회장, 2003년부터 22년간 연변과기대 상경학부 겸직 교수를 지낸 바 있다.
“모금 하는 일은 힘들지만 결과가 좋다. 다들 고맙다고 말을 하니 내가 더 감사하다.”는 그는 기금모금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해왔다.
고등학생을 비롯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가두모금을 하고 봄가을로 음악회를 열고 중견화가 초청 단체전도 연다.
전상복 회장은 아내 전송희 목사와 슬하에 건축설계사 아들 전용우, 실내장식가 며느리 자스티나 의사인 딸 전헬렌, 의사 사위 프레디, 손주 넷을 둔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또한 57년간 친인척 45명을 미국에 초청하여 정착시킨 바 있다.
“가장 큰 문제가 후임을 찾는 것이다. 이 재단을 잘 맡아 운영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는 전상복 회장, “뉴욕에 여러 민족이 있다. 우리가 계속하여 다민족들과 정을 나눔으로써 세계인의 피스 메이커가 되길 희망한다.”며 오늘도 사명감을 갖고 이웃사랑을 실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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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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