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의 하루는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생로병사의 인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향연이 숨김없이 펼쳐진다. 신생아의 울음과 장례식장의 통곡, (입, 퇴원으로) 만남과 이별이 일상인 곳이다. 병실마다 의료적 긴박감이 도사리고 있지만, 의료와 무관한 공간 (식당, 카페, 편의점, 미용실)도 공존한다. 사회의 다양한 영역이 한 건물에 모여 있어 곳곳에 탐험과 배움의 재미가 꽤 쏠쏠하다. 덕분에 나의 입원 생활은 병원 특유의 감성을 간직한 추억 앨범이 되었다.
병실의 분위기는 대부분 우울한 편이다. 내가 머문 5인 병실에서 하룻밤도 신음소리 없이 지나간 적이 없다. 다들 수술 후 통증과 더딘 회복으로 힘들어했다. 뇌수술은 중증으로 취급되지만 수술 후 회복은 다른 수술에 비해 쉬운 편이다.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 후 4일째 링거를 제거했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24시간 한쪽 팔이 링거에 묶인 불편함만 해소되어도 날아갈 듯 홀가분했다.
그 날, 옆 침대에 새로운 뇌수술 환자가 들어왔다. 커튼 사이로 보호자인 딸과 환자인 엄마의 대화가 들렸다. 식사를 하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뭐라도 권해보는 딸의 안타까움과 일체 음식을 거부하는 엄마의 힘겨운 신음소리… 저 엄마의 처지를 너무 잘 안다. 불과 며칠 전 나의 상황이다. 조심스레 그녀들을 방문했다. 수술 후 회복은 환자의 몫이니 뭐라도 드시라 눈물로 권고하고, 며칠 지나면 나처럼 회복될 거라 격려도 했다. 나의 머리에 쓴 붕대 두건을 보고 같은 뇌수술 환자임을 알아본 그녀의 눈빛이 힘을 얻었고 식사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내가 그녀와 같은 처지이며 한걸음 앞서 걷고 있음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링거를 뽑고 두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의 식판을 대신 반납해 주기도 했다. 병실은 이런 작은 일들로도 감사와 보람이 공유되는 그런 곳이었다.
입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병실 복도를 걸으며 묵상했던 시간이다. 복도에는 늘 의료장비를 착용하고 힘겹게 걷기 연습을 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나도 그 무리에 끼어 걷곤 했는데, 간혹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세상이 무척 낯설다는 생각을 했다. 거리를 메운 많은 사람들…나도 다시 저런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 편의 절박한 소원이 저쪽에선 소박한 일상이라는 현실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지금도 병원에 갈 때면 병실 쪽을 올려다보곤 한다. 어느 병실 창문에서 쓸쓸히 바깥 세상을 그리워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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