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한국 경제학사에서 최초의 제대로 된 경제학원론을 집필한 고 조순 전 경제부총리. 그는 올바른 경제학적 사고 과정에서 이 개념을 중시했던 것 같다. 53년 전 펴낸 ‘경제학원론’ 첫 장(章)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부분에 타당한 진리가 전체에 대해서는 비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미시이론에서 타당한 결론이 국민경제 전체에 그대로 원용(援用)될 경우,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1986년 제2전정중판)
■ 논리학에서 출발한 ‘구성의 오류’가 조 전 부총리 지적대로 경제현상에 적용된 사례는 ‘저축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 대표적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개인이 최대한의 합리성을 발휘해 저축을 늘린 결과가 거시적으로는 의도치 않은 재앙으로 이어진다. 저축이 늘어난 만큼 소비가 위축되면 경제 전반에 불황이 심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합리적인 게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 정보기술(IT) 혁명 탓일까. 1인 미디어 사용이 늘고, 정치·사회·연예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면서 ‘구성의 오류’와 유사한 역설적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확인된다. 활발한 의견 표출이 여론을 분열시키고, 개인의 애국심이 강조될수록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유명 연예인의 일탈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에서 두드러진다. 익명성을 방패로 삼아 온라인 공간에서 발휘한 ‘정의로움의 과시’가 현실 세계의 증오감을 증폭시키고 실제 폭력으로도 이어진다.
■ 이번 일주일, 대한민국 공동체의 새 좌표가 설정될 가능성이 높다. 평소라면 시민들이 저마다의 애국심을 불태우는 게 공동체 이익이 되겠지만, 이번은 다르다. 개개인의 애국적 행동이 전체 공동체에는 재앙이 되는 ‘애국의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만은 차라리 의도된 무관심에 빠지자. 내 생각은 유지하되, 누군가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상황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큰 호흡을 하고 잠시 수용하는 ‘무관심’이 앞으로 며칠의 덕목이다.
<조철환 / 한국일보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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