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봉쇄가 한창이던 1949년 4월 4일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출범했다. 소련의 군사적 위협 속에서 서유럽 국가들은 서둘러 조약을 체결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미국과 캐나다까지 동참했다. 나토는 단순한 군사안보 동맹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가치 동맹이었다. 출범 당시 12개국이었던 회원국 수는 32개로 늘어났다.
나토의 팽창 원인은 점차 증가하는 안보 불안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서독과 스페인,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새 회원국이 됐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에는 발트해 3국과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가입했다. 2024년에는 스웨덴이 나토의 일원이 됐다. 나토의 ‘동진’이라는 표현처럼 나토는 부단히 팽창해왔다. 현재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역시 나토 가입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토는 회원국 중 하나가 침략당할 경우 회원국 전체에 대한 도발로 간주해 공동 대응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조지아도 가입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우크라이나 역시 조속한 승인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토는 가입을 환영하지만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승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급변한 미국의 외교정책이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 증가를 재촉하고 있다. 신무기 독자 개발에 대한 나토의 의지 역시 더 커지고 있다. 유럽의 동부지역에 주둔하는 병력도 증가하고 있다.
창립 이후 40년 동안 나토의 대외적 움직임은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보스니아 전쟁에 개입하면서 나토는 더 이상 종이호랑이가 아님을 입증했다. 1999년에는 코소보를 지키기 위해 세르비아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이후 나토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해서도 군사개입을 결정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나토가 계속해서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까. 온 세계의 시선이 나토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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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근 / 고려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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