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재명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만, 일단 상식적이고 일 잘하고 부인 리스크 없는 대통령을 맞게 된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의 자질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가진 분명한 기준은 책을 읽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책읽기는 그의 가치관, 리더십, 사유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문장을 인용하며, 어떤 사상에 공감하는가를 보면 대통령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우리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독서하는 대통령은 깊이 있고 정제된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므로, 대통령의 독서는 국민의 수준도 끌어올리게 된다.
2010년 출간된 ‘대통령의 독서법’(최진 저)은 이승만부터 당시의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 8명의 독서습관을 분석한 책이다. 이에 따르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대통령은 김대중이고, 그다음으로 노무현, 박정희, 이명박을, 적게 읽은 이로는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을 들었다. 현 시점에서 쓰였더라면 문재인, 이재명이 많이 읽은 대통령 리스트에, 윤석열은 가장 아래 칸을 차지했을 것이다.
‘위대한 독서가’ 김대중은 도합 5년 반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옥중에서만 1,000권 넘게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수 처지에서도 하루 10시간씩 책을 읽었고, 그렇게 쌓은 지식과 정보를 훗날 국가경영 비전으로 활용했다. 당시 감옥에 책을 넣어주기 바빴던 이 여사는 “남편에게는 감옥이 대학이었다.”라고 술회했다.
그 중에서도 1981년 청주교도소에서 읽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김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책을 몇 번이나 정독했으며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인류의 미래를 설계했다”고 훗날 회상했다. 그로부터 17년 후 대통령이 된 그는 정보화시대에 접어든 세계에서 한국의 다음세대가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지식정보사회의 주역이 되도록 하겠다며 IT·벤처기업 육성에 힘을 쏟았고 오늘날 인터넷산업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되는 기틀을 다졌다.
노무현은 김대중에 버금가는 독서광이었다. 그의 왕성한 지적호기심은 무한대여서 단시간에 여러 분야의 책을 섭렵하는 자유로운 다독 습관을 가졌다. 청년시절엔 책 두 권을 동시에 놓고 볼 수 있는 ‘2단 독서대’를 발명하여 특허 등록까지 했을 정도다. 책에 관해 사람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던 노무현은 특히 ‘국가혁신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책을 참여정부의 기치로 삼아 그 내용을 현실정치의 개혁에 반영하는 ‘독서정치’를 펼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명박은 경영과 경제서적을 주로 읽는 실용 독서가였다. 바쁘게 살아온 CEO 출신답게 비행기나 달리는 차 속에서 책 한 권을 뚝딱 해치우는 속독파였고, 자투리시간에 필요한 책만 읽으며 전문성을 키우는 비즈니스 독서법을 선호했다.
작년 말 출간된 ‘대통령의 독서’는 문재인의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낸 신동호 시인이 쓴 책이다. 5년 동안 한국과 세계 여러 곳에서 대통령이 행한 연설문과 그 글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 20개를 담았다. 저자는 “책 좋아하는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려니 수시로 도서관을 들락거려야했다”며 서너 권의 책을 탐독한 후 연설문 한 줄을 쓴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 책에 대해 도종환 시인은 “대통령의 독서의 힘이 연설문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났는지, 한 권의 책이 대통령의 생각과 철학에 스며들어 얼마나 품격있는 언어를 만들어냈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고 썼다. 문재인은 퇴임 후 경남 양산의 사저 옆에 ‘평산책방’을 열고 책방지기로 매일 출퇴근하고 있으니 그의 각별한 책 사랑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로 두 달전 나온 ‘이재명의 서재’(이채윤 저)는 ‘이재명을 만든 100권의 책들’이란 부제가 보여주듯 사회 최하층 노동자였던 소년이 수많은 책을 통해 불평등의 세계를 이해하고, 위기 속에서 길을 찾으며, 사유를 확장시켜온 과정을 찬찬이 짚어간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절망 속에서 존엄을 지키는 법을 배웠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는 인간이 되었으며, 한나 아렌트의 책에서 진정한 용기를,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통해 AI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
예로부터 권력자들에게는 독서가 권장됐다. 호학군주(好學君主)라 하여 공부를 좋아하는 군주가 좋은 군주가 된다고 가르쳤다. 왕이 되고 싶었던 두 남자, 윤석열과 트럼프는 생애에 책을 한권이라도 읽었을까?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들은 여름휴가를 떠날 때 휴가지에 가져가는 책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제껏 임기 중 단 한 번도 독서리스트를 내놓지 않은 대통령이 양국에 딱 한명씩 있었으니 바로 도널드 트럼프와 윤석열이다.
책을 읽지 않는 지도자의 언어에서는 품격을 찾아볼 수 없다. 초등학생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증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트럼프의 연설은 미 국민의 수준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생긴 폐해를 대한민국은 두 번이나 뼈저리게 겪었고, 미국은 지금 엄청나게 당하고 있는 중이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