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한겨레신문은 ‘대통령 부인 존칭을 ‘씨’에서 ‘여사’로 바꾼다’는 알림 기사를 실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를 ‘김정숙씨’로 표기하는 것이 대통령을 무시하는 거라는 주독자층의 거센 반발에 무릎을 꿇은 조치였다. 이 신문은 “독자의 요구와 질책, 시대의 흐름에 따른 대중의 언어 습관 변화 등을 심각하게 고민한 결과”라고 했다.
■ 결혼한 여자, 혹은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은 ‘여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일상에서는 중년 이상 여성에 대한 존칭으로 종종 쓰인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이름 뒤에 여사를 붙이는 건 대통령 영부인이 유일하다. 언론에서도 대통령 부인은 전·현직을 막론하고 여사를 쓴다. 김혜경 여사도, 김건희 여사도, 김정숙 여사도, 이순자 여사도 다 여사다. 대통령은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전 대통령’이 되지만, 한번 여사는 영원한 여사인 셈이다.
■ 영부인이라는 호칭 또한 원래 대통령 부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일 뿐이다. 영(令)은 ‘훌륭하다’ ‘고귀하다’이니 ‘당신의 훌륭한 아내’쯤 되겠다.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진 건 권위주의가 절정이던 1970년 전후라고 한다. 과한 경어라는 지적도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그냥 ‘씨’나 ‘여사’ 정도에서 끝나야지 ‘영부인’이라는 건 우리 국민 의식에 비춰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 16개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김건희 여사가 왜 아직도 ‘여사’여야 하느냐고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다. ‘여사’라고 극존칭을 쓰면서 ‘양심의 가책도 못 느낀다’고 질타하는 어느 칼럼 문구가 부조화로 여겨질 법하다. 일부 언론은 이미 ‘씨’로 표기하지만, 기준이 모호하긴 하다. 이 참에 대통령 부인을 현직이든 전직이든 ‘씨’로 통일하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영부인’ 표현 또한 그냥 ‘부인’으로 해도 족하지 싶다. 부인이라는 단어 또한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권위적인 언어는 솎아내는 것이 시대 흐름이다.
<이영태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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