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거대한 하나의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는 ‘망상 이론’은 19세기 중반까지 정설로 여겨졌다. 스페인 신경과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1852~1934)은 이를 뒤집고 뇌는 뉴런이라는 개별적 세포 단위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한다. 신경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뉴런주의(Neuron Doctrine)’다. 그는 이 공로로 190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 위대한 발견의 중심엔 카할이 직접 그린 2,900점이 넘는 신경세포 그림이 있다.
신간 ‘이토록 아름다운 뇌’는 래리 스완슨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신경생물학과 교수를 포함한 6명의 저자가 카할의 그림을 바탕으로 그의 업적을 대중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그가 남긴 그림 중 80여 점을 선별해, 카할의 생애와 연구 내용을 담았다.
책에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였던 카할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그는 스스로를 “시각적 유형의 사람”이라고 설명할 만큼, 놀라운 관찰력과 기억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유년기엔 “복잡한 독일 연방 지리까지 헷갈리지 않고” 유럽 지도를 오직 기억에만 의지해 그렸고, “한번은 모세혈관에서 빠져나오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백혈구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지켜보느라 현미경 앞에서 쉬지 않고 스무 시간을 보낸 일도 있다”고 회상한다.
이런 재능은 당대의 기술적 한계를 보완하며 연구하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했다. 카할이 사용하던 현미경은 세포 수준만 관찰할 수 있는 해상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현미경으로는 뉴런 사이의 아주 좁은 틈, 시냅스를 관찰할 수 없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그림 수천 장을 토대로 1.4㎏의 우주,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상상하고 추측했다. 그리고 반세기 뒤, 1950년대 전자 현미경이 등장하며 카할의 생각은 대부분 사실로 밝혀진다.
카할을 보면서, 과학자이면서 예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오르는 건 그래서다. 그는 실제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와 달리 원래 화가를 꿈꿨고, 평생 그림과 사진, 글쓰기에 매료됐다. 꽃, 나무, 덩굴, 숲을 연상하게 하는 그의 신경세포 그림은 해부학적 삽화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는다. 책은 그래서 과학자의 논문집 같기도, 화집 같기도 하다. 그가 남긴 그림과 기록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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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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