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파격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일행을 격의없이 친숙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맞았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언행이 베일에 가려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으나, 곁에서 바라본 김 위원장은 극히 정상적이고 적극적인 수반이었다. 목소리는 다소 괄괄하면서도 정확했다. 이번 회담에 앞서 치밀한 준비를 한 때문인지 사안의 본질과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보도진 앞에서도 전혀 스스럼 없이 행동함으로써 자신감을 보여주려는
흔적이 엿보였다.
김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13일 오전 김위원장은 아무런 예고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물론 양국 정부간에는 협의가 된 사항이나 이를 모르던 이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항 중앙 카페트 주변에는 김영남 중앙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 북측의 다른 지도부가 근접을 하지 않아 김 위원장의 위상을 감지할 수 있었다.
비교적 건강하고 젊은 모습의 김 위원장은 남측 기자나 수행원들이 접근해도 전혀 꺼리는 기색이 없었으며, 주위의 시선이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담대하게 행동하는 모습이었다.
공항에서 김 대통령에게 북한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토록 한 것이나 김 대통령과 순안공항에서부터 백화원 영빈관까지 같은 차량을 이용한 것도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이 캐딜락 승용차의 상석인 뒷편 오른쪽에 오르자 왼쪽 문을 통해 김 대통령 옆자리에 앉았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모습은 김 대통령과 공식수행원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현관에서 김 대통령 내외와 기념촬영을 마친 뒤 김 위원장은 남측 공식수행원들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접견실에 들어가서도 직접 김 대통령을 수행한 장관들을 지명하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박재규 통일부
장관에게는 “TV에서 많이 봐서 잘 알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농담을 하는 등 여유있는 분위기도 연출했다.
상봉을 겸한 1차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김 대통령이 왜 평양을 오려하고,김 위원장은 왜 받아들였는가 의문부호가 있는 것 아닌가” “격식없는 대화를 하자”고 남측이나 세계언론이 주목하는 부분을 먼저 끄집어냈다. 또 “김 대통령이 몸이 불편한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남측 수행원들에게 “모든 것이 잘 돼 있다. 걱정없이 잘, 편안하게 지내시고 오늘 사업을 하자”고도 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김 대통령이 방문한 만큼 “조선민족의, 동방예의지국의 예를 다 갖춰,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시겠다”고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자신감은 “나도 통치를 하고 있지만 더 젊다”는 언급처럼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졌다. 이같은 자신감은 김 위원장이 측근들을 부를 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을 부를 때는 “용순 비서”라고 호칭했다.
( 평양=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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