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C의 달라스 윌라드 교수는 학교건물의 증개축보다 신축 기금마련이 더 쉽다고 꼬집은 적이 있다. 신축건물에는 기부자의 이름을 새겨넣을 수 있지만 증개축에는 기부자 이름을 새겨넣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동대가 처음 설립될 무렵 교회를 통한 학교 마켓팅이 주효해서 수험생 자녀를 둔 교인들의 상담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한동대를 권하지 않았다. 한동대에 기독교 교육의 미래가 달려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 교육은 그것이 아니었다.
한국 기독교 교육기관이 제구실을 못했다면 교회가 할 일은 장학금을 조성해 기존의 기독교 교육기관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이다. 따라서 새로운 대학을 설립한 것은 마치 증개축보다 신축이 더 쉬운 것과 같은 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들이 말하는 기독교 정신이라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캠퍼스에서 찬송가 소리와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 대학이고 그 소리가 끓겼다고 기독교 정신이 죽은 것인가? 그것은 신학교에나 적용될 기준이다. 미주 한인사회 부모들은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기독교대학인 하버드나 프린스턴에 자녀를 보내려고 애쓰는가? 기독교 정신이란 진리와 자유의 창조정신이다. 미 명문 기독교 대학 출신들이 이 사회를 이끌고 가는 것은 그들이 대학에서 배운 이 정신들 덕분이다.
보수 기독교대학인 힐즈데일 칼리지에서 30년간 학장을 지냈던 로슈 3세는 28년간 3억2천만 달러를 모금해 대학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 받아왔다. 그러나 1999년 10월 이 대학 출판부장이자 며느리인 리사가 권총으로 자살한 이유가 시아버지와 19년간 이어진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보수파 전체가 궁지에 빠진 적이 있다. 지나친 보수이념의 표방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국같은 학연사회에서 후발대학이 그만큼 성장하고, 보수적 기독교 이념이 좋은 학생들을 모집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한국교회의 자랑이기에 한동대 총장 구속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학교 운영을 둘러싼 법적인 문제로 법원이 결정할 문제이다.
한국에서 ‘학교장사’하는 분들이 기금이나 토지의 용도변경으로 구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용도변경된 돈이 선하게 사용되었다고 해서 면죄부를 줄수는 없다. 마치 거룩한 순교인 것처럼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동대 총장이 갇힌 구치소 앞에서 학생들이 스승의 노래를 부른 것으로 ‘총장무오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군사정권 시절 학생들이 저항가요를 부를 때는 철없다고 비판하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스승의 노래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의의 기준은 결코 학생들의 노랫가락에 달려있지 않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기독교 정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싹트고 신앙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보수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전 한동대를 걱정하는 광고를 실은 성직자들은 나같이 작은 교회 목사가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훌륭한 분들이다. 그만큼 한인사회에 대한 영향력도 큰 분들이기에 그분들의 한동대 시각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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