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원에 들어서면 아래층 오른편, 새로 단장한 도서관 쪽으로 눈길이 먼저 간다. 유리문 안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이동식 책장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조용히, 그러나 분주하게 일하는 한 여성의 모습이 한 폭의 정결한 그림처럼 다가온다.
도서실 분위기와 똑같이 차분하고 지적이며 상큼한 인상의 김세정씨(37). 책을 벗삼아, 책과 씨름하며 문화원을 지키고 있는 도서관 사서다.
"하루종일 책에 둘러싸여 일하지만 정작 책 읽을 시간은 없답니다. 정리하면서 머리말과 목차까지 훑어보는 것이 고작이지요. 그래도 늘 책을 가까이에서 대하고, 책과 함께 일하는 것이 특별한 기쁨이예요"
기쁨은 그것 말고도 더 있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외국인들, 2세 젊은이들이 그녀의 도움으로 적당한 자료를 찾아본 후 한국을 잘 알게 됐다며 고마워할 때 문화원 사서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고충도 있다. 지난 봄 도서관을 새로 단장한 후 아직 자료정리가 다 안 돼 전산화 작업이 진행중인데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하면 "문화원에 그런 자료도 없느냐"고 다짜고짜 화를 내는 사람, 어느 도서관이나 빌려갈 수 없는 비매품 참고서적이 있는데 꼭 그걸 가져가겠다며 어거지를 쓰는 사람, 책을 제때 반납하지 않는 사람, 누구는 먼데서 일부러 찾아오는데 가까운데 살면서도 바쁜 사서에게 자료를 찾아 팩스로 보내달라고 ‘심부름’시키는 사람들은 문화원 도서실을 너무 남용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속상하다.
"책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에게 제일 화가 나요. 책장을 접어가며 읽거나 낙서, 또는 줄을 그으며 읽고, 심지어 사진을 도려내는 분도 있어요. 연필로 그은 것은 일일이 지우지만 펜으로 낙서하면 도리가 없지요. 내것이든 빌려온 것이든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마음이 아쉽습니다"
문화원 도서관의 장서는 1만7,000여권(비디오, 시디롬 포함). 이중 80%는 한국어 책이지만 20%정도는 영어로 된 책들이고, 일년에 두번씩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100-200권이 한국서 들어온다. 하루 이용객은 30여명. 외국인도 적지 않아 꾸준히 도와줄 자원봉사자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한국에 관해 영어로 된 자료를 찾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요. 그만큼 미국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겠죠. 자녀들과 함께 문화원을 찾아 전시품도 보여주고 책과 비디오를 관람하는 부모님도 아울러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도미, 책이 좋아 사서가 됐다는 김씨는 아직 독신으로 주말이면 미술관을 찾거나 무용이나 음악회등 무대공연을 관람하며 ‘수준높은’ 삶을 즐기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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