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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희 편집위원>
눈에 익으면 별게 아닌데 처음에는 굉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중의 하나가 패션이다. 60년대에 첫선을 보인 미니 스커트가 대표적. 한국에서는 경찰들이 자를 들고 다니며 스커트 길이를 단속하는 토픽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해방의 세기로 불리는 20세기에 여성 의복을 둘러싸고 일어난 가장 획기적 사건은 뭐니뭐니 해도 “여성이 바지를 입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20세기 전후 여성들의 의상이란 일은커녕 가만히 서있기도 불편한 복장들이었다. 허리는 숨도 못쉴 정도로 졸라매고 버팀대로 둥글게 받쳐진 치마는 조금 과장하면 한방 가득했다. 사람을 위해 옷이 있는 것인지, 옷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는데 이런 ‘옷의 감옥’에서 해방되라고 충고한 사람은 뜻밖에도 남성이었다.
1850년 노예폐지론자였던 게릿 스미스가 딸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에게 말했다.
“감옥 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한 여성은 영원히 무력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복장부터 바꾸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엘리자베스가 만든 것이 블루머. 땅에 끌리던 치마를 깡충하게 줄이고 대신 한복의 고쟁이 같은 바지를 속에 입는 옷이었다.
블루머를 여권운동가들이 입기 시작하자 난리가 났었다. 블루머 입은 여성 개인에 대한 야유나 공격은 물론 교계는 “사탄의 소행이다”고 비난했다. 여성의 권리 운운도 문제지만 바지 입는 건 더 못 봐주겠다는 것이 당시 사회적 반응이었다.
패션감각을 가미해 바지를 자연스럽게 여성의 의상으로 편입시킨 공로자로는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꼽힌다. 샤넬은 코르셋을 없애고 거추장스런 장식들을 없앰으로써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선보인 그의 바지는 여전히 스커트의 변형 정도. 요즘과 같은 바지가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여권운동이 본격화하고 진보적 사고가 팽배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바지가 차츰 여성의 옷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발전해온 20세기 패션사에서 한 사람을 더 꼽으라면 지난 7일 은퇴를 발표한 이브 생 로랑을 들수 있다. “샤넬이 여성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생 로랑은 힘을 주었다”고 패션계는 말한다.
여성들이 ‘해방’의 차원을 넘어 고위직으로 속속 진출하면서 애용된 옷, 바지정장을 처음 선보인 사람이 바로 생 로랑이다. 남성 정장의 품위를 그대로 살림으로써 여성들에게 권위와 활동성을 동시에 제공했다. 여성을 이성으로 사랑할 수는 없어도 여성이 무얼 원하는 지는 참 잘도 아는 남성으로 그는 기억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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