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공휴일의 ‘태생’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역동적 새 희망, 비폭력 정의구현, 국가 창업, 사회제도의 혁명적 전환, 고귀한 희생 및 기여, 획기적 발견 등으로 최소한 미국 역사에 굵은 획을 그어야 연방공휴일에 끼일 수 있다.
최근 뉴욕주 알덴의 걸스카웃이 뉴욕 테러사건이 일어난 9월11일을 연방 공휴일로 정하자며 청원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조지아주 카터빌의 한 여성이 ‘페티션 온라인 닷컴’(PetitionOnLine.com)이란 웹사이트에서 14일 11시 현재 1만3,760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백악관이나 의회가 이 아이디어를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한 여론조사에서 찬반이 48%로 균등하게 나뉘어 흥미를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연방 공휴일에 오른 열흘과 어깨를 견주려면 ‘멤버십 자격’을 갖춰야 한다. ‘새해 첫날’은 현세에의 희망을, ‘성탄절’은 현세와 내세에의 희망을 안겨준다. "’9·11’을 새 출발의 기점으로 삼자"고 하지만 새해 첫날이나 성탄절과 비교하긴 어려울 듯하다. ‘마틴 루터 킹 데이’는 모든 인간에 자유, 평등, 존엄성이 부여돼야 한다고 외치며 비폭력 민권운동을 전개한 킹 목사의 정신이 꺼지지 않는 ‘정의의 횃불’임이 인정된 때문이다. "’9·11’이 정의 회복의 기폭제"라지만 폭력에 의한 폭력 제압이니 비폭력 정신에는 어긋난다.
’대통령의 날’은 전·현직 대통령을 모두 기념하는 날이지만 특히 국부인 조지 워싱턴과 흑인을 노예의 질곡에서 해방시킨 아브라함 링컨의 기념비적인 공적이 높이 평가돼 생긴 것이다. ‘9·11’로 사회가 변화를 겪고 있지만 워싱턴과 링컨처럼 혁명적 대변혁을 이뤘다고 하기엔 역부족이다.
’현충일’은 순국선열들을 위로하고, ‘재향군인의 날’은 나라를 지킨 군인들의 봉사정신을 치켜세운다는 의의를 담고 있다. 군인뿐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의 사회 기여도를 빼놓을 수 없으니 ‘노동절’이 생긴 것이다. "테러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테러와 관련한 영웅적 행동을 높이 사자"고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인한 참담함을 기억하는 것처럼 마음에 간직하는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미국인들은 독립선언문이 채택된 것을 감사하며 ‘독립기념일’을, 미 대륙을 발견해 오늘이 있게 한 스페인 탐험가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의 모험심을 숭앙하며 ‘컬럼버스 데이’를, 한해의 결실에 고개 숙이며 ‘추수감사절’을 각각 연방 공휴일로 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꿰어 맞추려 해도 ‘9·11’과 ‘감사’는 궤를 달리한다.
지금껏 적용된 기준에 따르면 ‘9·11’이 연방 공휴일로 낙점을 받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혹시 세상이 놀랄만한 기발하고 설득력 있는 명분을 제시하면 모를 일이지만…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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