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관광단은 미주 각 지역에서 모여들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인사할 틈이 없었다. 더구나 1차 팀은 미주 서부와 캐나다 교포들이 서로 섞여 누가 누군지 서로 잘 몰랐고 복장이나 인상으로 직업을 대강 짐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럴 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람은 시건방져 보이거나 인상이 험해 보이게 마련이다. 내가 이 케이스에 걸려들어 오해를 샀다.
선글라스를 낀 데에는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미주 관광단이 평양순안 비행장에 도착하자 TV 카메라맨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3명이나 몰려들어 우리 일행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우리 모습이 북한 TV 뉴스에 나오는 것을 연상하게 되었고 더구나 대남 방송에 나갈 경우 해석을 잘못 붙이면 엉뚱한 내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고 그들이 찍는 기념촬영 때는 의식적으로 피했다.
거기서 끝냈으면 별 탈이 없었을 텐데 이 ‘선글라스의 사나이’가 쉴새없이 사진을 찍으니까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남쪽에서 파견한 기관요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관광객이면 자기 사진만 찍을 일이지 왜 다른 사람들 얼굴을 열심히 찍는가. 심지어 함께 간 미주 관광단 사이에서조차 오해가 있었다. 나중에 평양에서 나와 중국 신양에서 KAL기를 탔을 때 관광을 함께 했던 캐나다 교포 H씨가 나에게 다가와 "실례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었다.
신문기자라고 했더니 "그런 줄 모르고 우리부부는 안기부에서 나온 정보요원인 줄 알고 말조심했죠"라며 안심하는 표정이다. 심지어 H씨의 부인은 "안기부면 안기부지 우리가 뭐 죄지은 것 있수. 평양관광은 이제 죄가 안돼요" 하더라는 것이다.
왜 H씨 부부가 나를 안기부 요원으로 봤느냐고 물었더니 선글라스 낀 것이 꼭 안기부 요원 인상이라나. 우리는 배를 쥐고 한참 웃었다. 아니 지금 대통령과 안기부장이 평양을 방문하는 세상인데 해외동포가 평양관광 가는 것이 뭐 이상할 것 있느냐고 했더니 H씨는 "그래도 옛날 습관이 있어서 하루아침에 사고방식이 바뀌어지지 않습디다"고 했다.
북한측 안내원도 내가 이상했던 모양이다.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니까 하루는 "뭘 그렇게 많이 찍습네까. 직업이 뭡네까" 하고 마침내 물어왔다. 출판업이라고 하자 무슨 출판을 주로 하느냐고 또 물었다. "뭐, 이것저것 출판합니다" 하고 구렁이 담 넘듯이 대답했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평양관광에서 두번의 해프닝이 있었다. 한번은 묘향산의 김일성 선물관에서 안내원 설명을 녹음하다가 소형 녹음기를 압수 당했고 출국하던 날 순안공항에서 공항 내부를 사진 찍다가 사진을 검열 당했다. 묘향산에서는 안내원이 어찌나 빨리 말하는지 받아 적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녹음기를 다음날까지 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가지고 가서 다 틀어봤을 것이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욕을 했으면 좀 어려울 뻔했다. 녹음기에는 취재용 단어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북한측 안내자들이 내가 정보요원이 아니라 신문기자인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전보다 태도가 훨씬 친절했고 자신들이 이번 행사를 왜 개최하는지 자주 설명했다.
순안공항에서는 출영대 내부를 찍는 순간 인민군 군복 입은 사람이 실수로 앵글에 잡혔다. 그는 얼굴이 벌개져 나에게 다가오더니 "사진기 내놓으라우" 하며 강압적인 자세로 말했다. 자기 얼굴을 당장 지우라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니까 지우는 것이 가능했다. 나중에 보니 그는 공항보안 책임자쯤 되는 모양이다.
몇 번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지만 나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이상한 장면만 촬영하지 않는다면 평양관광에서 별로 걱정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평양가도 되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이번 관광여행에서 기자가 겪은 경험담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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