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편에서 본 그림과 저쪽 편에서 본 그림은 다르다. 여기서 보면 사각형인데 건너편에서 보면 삼각형일 때가 있다.
월드컵 한국-폴란드 경기를 앞두고 한국의 한 TV가 폴란드에 기자를 보내 현지표정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 그쪽에서 본 폴란드-한국 대전은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그림이 달랐다. 바르샤바 시민들의 코멘트는 한국 축구가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폴란드 축구를 이기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폴란드는 왕년에 4강에 진출했던 나라입니다.”
“한국은 주최국이기 때문에 본선에 진출한 것이지 토너먼트에서 올라온 국가가 아니잖아요? 폴란드는 여러 나라를 꺾고 한국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야죠.” “한국이 프랑스팀과 2대3의 실력을 보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가전입니다. 진짜 경기에서는 좀 달라요. 폴란드는 한국팀을 2대0 또는 2대1로 이길 겁니다.”
폴란드 국민들의 코멘트를 듣고 보니까 일리가 있었다. 폴란드가 왕년에 4강까지 진출했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일이다. 어허, 이거 그림이 어째 이상하네. 우리가 너무 경솔하게 승리를 장담한 것 아닌가. 만약 한국팀이 폴란드팀에 지는 날엔? 히딩크는 망신살이 뻗치네. 경기도 열리기 전 완전히 우리가 이긴 것처럼 신문과 TV가 너무 앞서 간 것은 확실해.여러 가지 가능성이 연상되었다. 무엇보다 ‘히딩크’라는 사람이 걱정되었다. 신화를 낳는 것처럼 신문마다 대서특필해 왔는데 만약 한국팀이 진다면 그의 체면이 뭐가 되는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은 유럽인들을 감독으로 고용하고 있다. 한국은 네덜란드의 히딩크, 일본은 프랑스의 트루시에, 중국은 유고 출신의 밀루티노비치 감독이다. 세 사람 모두 유럽에서는 내로라 하는 축구감독들이다. 특히 중국팀을 코치하고 있는 밀루티노비치는 멕시코, 미국, 코스타리카 감독이었으며 나이지리아를 본선 2라운드에 올려놓은 명장이다.
이 세 나라의 경기를 보면 히딩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윤곽이 드러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졸음을 참으며 중국-코스타리카, 일본-벨기에, 한국-폴란드 경기를 모두 관전했다.
한국팀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정신 없이 뛰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공을 아무데나 차내는 과거의 한국팀이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체력과 기본기였다. 기초가 튼튼하면 여유가 있어 보이게 마련이다.
한국팀은 전후반에서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고 공을 완전히 컨트롤하고 있었다. 중국팀이 보여준 경기가 과거 한국팀과 비슷했다. 일본팀도 스피드는 있었으나 연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팀은 세련되어 있다. 촌티를 완전히 벗은 것이다. 아주 멋쟁이가 된 것이다.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 다시 태어난 축구다. 한 사람의 유능한 지도자가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 자세라는 것을 말해준 경기였다. 기초가 약하면 그 위에서 무슨 재주를 부려도 그것은 재주에 그칠 뿐이다. 실력이 아니다.
또 한가지 느낀 것이 있다. 사람이 어떤 일을 맡느냐에 따라 능력이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히딩크는 축구선수로는 별 볼일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감독으로는 뛰어난 사람이다. 평사원으로는 그저 그렇던 사람이 부장이 되면 뛰어난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인 케이스도 있다. 그리고 유능한 감독은 선수 모두가 꽃을 피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스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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