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루마니아. 차우세스쿠는 미처 도망을 가지 못했다. 성난 군중이 밀어닥쳐 그는 아내 엘레나 등 측근과 함게 붙잡혔다. 차우세스쿠 부부는 곧바로 군중에 의해 처형됐다. 무솔리니가 정부 클라레타와 함께 붙잡혀 치욕스런 죽음을 당한 것과 같은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1979년 이란의 팔레비왕은 회교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탈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친 것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망명지를 옮겨다니다가 18개월 후 이집트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숨졌다.
적군이 심장부를 향해 급속히 진격해오고 있다. 시간이 없다. 벙커에 깊숙히 숨어 있던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자살이다. 그리고 자신의 시체에 휘발유를 끼얹고 소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45년 소련군의 진주를 앞두고 베를린의 벙커에서 맞이한 아돌프 히틀러의 최후다.
사담 후세인은 어디에 있을까. 제2 이라크 전쟁은 이른바 ‘목베기 폭격’과 함께 시작됐다. 폭격의 타겟은 물론 사담이었다. 이후 줄곧 제기되어온 질문이다.
전쟁은 사실상 끝나고 과도정부 구성까지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도 사담의 운명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죽었나, 살았나. 살았다면 국내에 숨어 있나, 탈출했나….
미군은 사담 등 이라크 최고위층의 사진을 담은 52장의 게임용 카드를 제작해 배포했다. 후세인 정권 지휘부 체포작전에 본격 돌입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억측은 더 난무하고 있다.
사담은 과연 살아 있는 것인가. 그 가능성은 현재로는 희박한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최후를 맞이 했을까. 차우세스쿠 형은 분명히 아니다. 팔레비 스타일도 아니다.
히틀러와 같은 운명을 맞이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벙커에서 폭사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말이다.
당시에도 히틀러의 최후를 둘러싸고 갖가지 설이 나돌았다. 불에 탄 그의 시신 중 두 개골만 건져져 스탈린에게 보내졌다, 측근과 함께 모처로 도망해 나치제국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등등.
결국 히틀러는 정부와 함께 베를린의 벙커에서 자살을 한 것으로 한참 후 판명되고 나치제국의 부활은 한낱 기우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면 사담의 측근들은 어디로 갔을까. 역시 히틀러의 측근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악명높은 아돌프 아히히만이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던 것 같이. (그는 나중에 붙잡혀 처형됐다.)
그나저나 이 스토리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독재권력, 그리고 그 권력에 빌붙어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은 결국 엄중한 심판을 받는다는 극히 평범한 사실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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