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을 접할 때마다 한결 같이 느껴지는 의문이 있었다.
"수 백년이 몇 번이나 지난 오늘 날, 어떻게 옛날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 해 낼 수 있을까?" 하고.
혹시, 매번 다르게 연주하는 것이 아닌지 눈 여겨봤던 기억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새크라멘토 지역에 ‘한우리 풍물패’를 이끌어 오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 음악 역사에 관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궁금해하던 여러 가지 의문들이 풀리게 된 것은 물론 가슴 벅찬 감격과 자부심 마저 느끼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10대 철부지 시절에는 화려한 음으로 이루어진 서양 음악에 반해 둔탁한 타악기가 주종을 이루는 우리나라 음악을 창피하게만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뒷날, 투박한 그것들이 어느 민족도 흉내내기 힘든 한민족만의 고유한 음색이며 장단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단 한번이라도, ‘정간보(세종 실록)’나 ‘악학궤범’을 접해본 독자라면 기자의 감격을 이해 할 것이다.
’정간보’란 세종 때 창안된 전통 음악을 기보하는 악보인데, 우물 ‘정’자 모양의 네모 한 칸을 한 박으로 하여 음의 길이를 나타내고, 그 칸 안에 율명을 적어 높이를 나타내는 동양 최초의 유량 악보(음의 길이와 높이를 함께 나타낼 수 있는 기보법)이다. 상고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던(위지동이전) 우리 음악의 역사는 수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우수한 조상을 가진 우리라지만 과연 얼마나 한국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 해보면 부끄러울 때가 많다. 기자 역시 풍물놀이(풍물굿)를 ‘농악’으로 잘못 이해했던 경험(부끄러운 일이지만)이 있다.
이제라도 그 뜻을 함께 살펴 보면 어떨까?.
’농악’이라는 용어는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의 연중 행사,1931, 오청>에서 나타나는데, 당시 공연을 담당하던 원각사의 ‘협률사’ 라는 단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한국의 전통민속예술을 말살하기 위해 농업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굿을 허용했고 ‘농악’이라는 이름 하에서만 굿판을 열 수 있게 하여 한국의 우수한 전통 문화를 철저히 왜곡시키려 했던 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굿’이라는 말은 원래 ‘모인다’라는 뜻이다. 모여서 공동체 내의 일을 의논하고 풀어가며, 공동체적 염원을 집단적으로 기원하며 희망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삶의 결의를 다지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민중의 의지가 집결되는 당굿을 봉쇄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무속으로 연결하여 ‘패속’ 이란 이름 하에 뿌리깊은 일상적 풍습이 상스러운 것으로 매도하여 배척하였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 영고 등의 굿판(축제)에 이미 북이나 쇠를 사용한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의 강압적 사고에 이간되면서 우리 고유의 연희적 기능을 무속으로 변색시켜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일제의 영향을 받은 ‘농악’이라는 말보다는 풍물놀이(혹은 풍물굿)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 중에 한가지가 일제에 의해 왜곡된 것들을 짚어내고 바로 잡아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민 사회에서 우리 문화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 주며 한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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