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허리띠로 졸라매듯 온 세계의 절반을 식민지화 하고 ‘해질 날이 없다’고 장담하던 대영제국(Great Britain)과 한 식민지 사이의 얘기다.
미국이 독립하기 전, 북미 대륙의 영국 식민지인들에게 언론을 통해 확실한 행동 방향을 제시한 사람은 패드릭 헨리(Patrick Henry, 1736-99)와 토머스 페인(Thomas Pain, 1737-1809)이다.
헨리는 1775년의 리치몬드 시민대회에서 영국정부에 대해「자유를 달라, 아니면 주검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고 기염을 토하였고. 페인은 「상식」(Common Sence, 1776년)이란 책자에서 "영국의 군주제야말로 ‘자연의 법’(law of nature)에 어긋나는 정부 형태이며, 아메리카와 같은 거대한 대륙이 영국과 같은 작은 섬의 통치를 받고 있는 사실 자체도 자연의 법에 어긋난다"고 사회계약설의 입장에서 미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당시 이 책은 3개월만에 10만부가 매진되는 큰 호평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의 이같은 반제국주의 급진사상은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1776년 1월, 대륙회의에서 처음으로 독립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었고, 실제로 13개의 식민지는 펜실베이니아 식민지를 선두로 제 각기 독립정부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후라워 호(號)를 타고 아메리카 동해안 프리무스에 상륙한지 160여년만의 결실이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식민지의 경제적 자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탕조례(1764년), 인지조례(1765년), 차조례(1773년)등을 제정하여 식민지를 압박하자 식민지인들은 영국 의회에 대표를 파견하지 않았으므로 영국은 식민지인에게 내국세를 부과할 권리가 없다. 즉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고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13개 식민지는 1776년 7월 4일 대륙회의를 다시 열고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독립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조선조 22대 정조<正租> 1년) 본국은 이에 비상조치를 발동 8년간 식민지군과 독립전쟁(1775-83)을 벌리다가 1781년 요크타운(Yorktown)에서 패전, 대세가 불리해지자 1783년 파리평회의에서 아메리카합중국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렇게 태어난 아메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은 식민지 반란으로 생겨난 최초의 공화국이였고 그것은 앞으로 다른 식민지 반란의 선례가 되고,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된것이다.
이 아메리카합중국은 뒤이어 1787년에 제정된 헌법에 의하여 연방제도에 의한 공화정체를 채택하고 죠지 워싱턴(재위 1789-97)을 제1대 대통령으로 선임하였다.
그후 링컨(16대)을 거처 한국 현·근대사와 관계가 깊은 프랭클린 루스벨트(32대), 트투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부시, 클린턴, 부시로 이어져 올해로 43대 227년의 연륜을 쌓게된 것이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4th of July』행사가 대 소도시 곳곳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퍼레이드와 불꽃놀이인 폭죽(Firework)이 주류를 이루는 이 행사는 약 1만여곳에서 열리고, 로컬 마을까지 합치면 폭죽의 경우 3300여만 곳에서 약 3억3천만여불의 폭죽이 하늘에서 산화한다. 관용(官用)은 1개당 6천불에서 25만불, 개인용은 150불짜리까지 있다.
다음은 대영제국과 관련하여 신(神)의 나라를 자처하고 한국(1910)을 병합한 뒤 ‘대동화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내세워 중국(1937), 동남아를 휩쓸고 미국(1941)에 싸움을 건 소위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에 관한 얘기다.
1940년 9월 군국주의(軍國主義) 일본은 독일과 이탈리아와 3국동맹을 체결하고, 1941년 12월 7일(미국 시간) 일본 공군은 선전포고 없이 진주만(Pearl Harbor)을 기습하여 미평양함대를 격파하는 소위 ‘도라 도라’ 작전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일본 대본영(大本營)은 미·영 양국에 사후 선전포고를 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한때 일본은 마니라, 싱가폴, 버마 외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점령하여 북으로 아류샨 열도, 남으로 솔로몬 군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1942년 6월 미드웨이(Midway) 해전에서 참패를 본 후 동맹국인 이탈리아, 독일이 미영연합군에 항복한데 뒤이어 1945년 8월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끼(9일)에 원자탄이 투하됨으로서 일본은 8월 15일에 포스담 선언을 수락, 무조건 항복을 하였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이치로 대영제국과 대일본제국은 이렇게 제국주의의 막을 내렸다.
미국의 7월 4일과 한국의 8월 15일은 독립과 해방이란 유사한 입장에서 제국주의로부터 풀려난 감격의 날이다. 그리고 한미 이 두 나라는 민주공화제로 나라를 세웠다.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는 흔히 8·15 해방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이후로 알기 쉬우나 한국은 우호라는 말 그대로 1866년이래 미국을 우정으로 대하였다.
오늘 227주년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짧은 역사의 미국이 세계 최강국 최부호국을 자부하면서도 왜 우리는 그 나라 그 시민답게 세계에 떳떳하지 못한지, 그리고 어쩌다가도 아니고 해마다 단 몇 초 동안의 눈요기를 위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는 3억3천만여불의 폭죽(爆竹)은 閨?거액만치나 떳떳한 것인지 생각을 하게된다.
/철학박사 ikhchang@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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