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친구에게
한국엔 벌써 나뭇잎들이 오직 갈색만을 고집하는 가을이 왔니? 얼마 전, 남부지방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태풍 매미 때문에 어쩜 가을이 왔는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암튼, 벌써 달력의 날짜가 9월의 중순을 가르키고 있으니 계절은 가을임에 틀림 없는데, 여긴 때아닌 더위로 며칠째 헉헉거리고 있다. 오늘은 너무 더워서 약간의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네가 결혼한 지도 이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는구나. 어때 신혼 재미는? 신혼여행은 즐거웠고? 어머, 이런 질문을 마구 해대는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아줌마다, 그치?
갑자기 너랑 후배 혜영이가 내 부케를 서로 받겠다고 실랑이를 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 남편이 출장 갔을 때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한 나를 위해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일도 그리고, 큰 방과 작은 방에 하나씩 너무나도 예쁜 벽시계를 사서 걸어주던 일도 생각난다. 근데, 나는 뭐니?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조차 못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친구! 인생이란 긴 여정. 언젠가 내가 이 미안함을 만회할 일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라고! 후훗~
참,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냈니? 결혼해서 처음 맞는 추석이었잖아. 시댁과 친정 두 곳을 오가느라 많이 바빴겠다. 친정과 다른 시댁 분위기와 가풍에 많이 당황해 하진 않았는지, 명절 당일 날을 친정이 아닌 시댁에서 보내느라 괜히 눈물 훌쩍이진 않았는지, 나도 아직 서툴기만 하면서도 결혼 선배라고 네 걱정이 된다. 실은 며칠 전이 함께 살고 있는 아주버님의 생신이었는데, 이 철부지에 덤벙이 재수씨가 까맣게 잊어 먹고는 생일 미역국을 아무 생각 없이 먹었지 않겠니!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럽던지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일을 겪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댁과 친정을 사이에 두고 나의 감정의 거리를 잰다면 아마도 친정 쪽으로 90정도 쯤에 내가 서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과 생각으론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식구들인 시댁식구들도 나의 가족이며 사랑해야지 하면서도, 내 본능적인 감정과 행동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본다. 친정에 전화를 한 번 하면 시댁에도 전화를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전화기에 손이 가질 않고, 내 동생 생일은 한 달 전부터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남편에게 수도 없이 환기시키지만, 아주버님과 형님의 생신은 이유없이 자꾸만 잊어버린다. 이런 나의 태도와 감정이 시 자만 들어가도 어렵다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시댁에 대한 얘기들을 들으면서 형성된 편견 때문인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인색한 나의 본성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내가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살다보면 시댁을 향한 나의 사랑의 감정이 조금씩 더 자라겠지 하는 대책 없는 낙관적인 생각보다는 지금 당장의 한 번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은 꼭 시댁에 전화를 드려야겠다.
친구야, 낙엽진 거리를 너랑 팔짱끼고 걸으며 수 많은 얘기를 나누고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찻집에서 함께 커피 마시던 일이 무척 그리운 날이다. 이제 너도 아줌마의 대열에 들어서서 더 함께 할 말이 많을 텐데 말이야. 아쉽다! 건강하고 다음에 또 쓸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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