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남가주의 약 10개 지역에서 맹렬한 기세로 타오른 산불은 27일 현재 수천동의 주택이나 건물뿐 아니라 벌써 수십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또 긴급대피로 목숨은 건졌지만 일생동안의 재산과 추억 등이 담긴 집을 고스란히 잃고 순식간에 홈리스로 전락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듀그 애담스는 25일 밤 라모나 인근의 처가 집에서 느긋하게 TV 밤 영화를 즐기고 있다가 헬리콥터 굉음과 연기냄새에 잠을 깬 딸의 비명소리를 듣고 집밖으로 뛰어나왔다. 이미 빙 둘러 있는 이웃집들이 불길 속에 휩싸여 있었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그는 식구들을 깨우는 한편 손에 잡히는 대로 앨범과 소중한 추억 등을 보따리에 주워담았다. 26일 새벽 적십자 셸터에 간신히 도착하여 호흡기 치료를 받은 그는 가까운 곳에서 춤추는 불길을 보는 순간 얼굴과 손과 발에 마비가 오고 목과 가슴에 통증이 오면서 꼼짝도 못할 것 같았다고 당시 악몽을 회상했다.
이번 산불로 인명피해나 재산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으로 꼽히는 샌디에고 산불지역의 주민들은 26일 대피소에서 자신들의 집에 화마가 덮치고 활활 타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상실감과 허탈감에 온몸을 떨었다. 스크립스 랜치를 휩쓴 불길은 최소한 150채의 주택을 태웠고 따라서 엘리자베스 인그럼(16)이나 아만다 히콕(15) 등 스크립스 랜치 고교생들 가족을 졸지에 길거리에 내몰았다. 경찰은 이 지역에 불길이 덮치기 직전 집마다 다니면서 주민들을 깨웠고 15분 안에 불길이 오게 된다. 즉시 대피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고 통고하는 바람에 수백명 주민들이 맨손 대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샌버나디노 국제공항에서 100마일 북쪽에서는 약 1,000여명의 대피주민들이 차 속이나 아스팔트 위의 텐트, 격납고 간이침대 등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런 와중에서도 청소년들은 새로 주지사가 된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토털 리콜’ 비디오 테입을 감상하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에게 치킨 디너와 칩스, 살사, 쿠키 등을 제공했으며 또 긴급 대피한 주민들이 마지막 순간에 선택한 고양이, 금붕어, 개 등 각종 애완동물들이 가득한 주차장까지 돌보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샌디에고 동쪽의 레이크 사이드에 살던 짐 멈포드는 25일 새벽 한 이웃이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잠을 깼다. 산간지역에 오래 살았던 멈포드는 그동안 수많은 산불을 보면서 소화기, 호스나 동력삽 등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바로 집 앞에 넘실대는 불꽃 기세에 눌려 단 5분도 버티지 못한 채 그와 가족이 직접 지은 꿈의 집(5,000스퀘어피트)을 포기하고 뛰쳐나왔다. 나중에서야 그들 부부는 목숨이 경각에 있었으며 대신 100만달러 이상의 집은 재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제 5세와 8세 자녀가 주말이라서 할머니집에 가있었기 때문에 ‘극심한 공포’를 직접 겪게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리자 폰테스(43) 부부와 그녀의 딸은 26일 새벽 3시45분께 불길로 이미 포위된 길을 차로 뚫고 나온 케이스. 이들이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불꽃이 사방에서 번득였다. 이들은 타월을 물에 적셔서 온몸에 둘렀고 머리 위에 떨어지는 불똥을 피해 필사적으로 주차된 차까지 갔다. 이때 이웃 트레일러 주택이 폭발하는 것이 보였고 이들은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불길 속을 헤쳐 나와 목숨을 건졌다.
다이앤 헨드릭(48)은 새벽 4시30분에 연기와 타는 냄새 때문에 잠을 깨어 밖을 내다보니 천지가 붉은 빛이었다. 그녀는 먼저 이웃집의 말 7마리를 대피시키는 것을 도운 후 차를 탔다. 그러나 이미 불길은 주변나무와 정원 잔디를 기세 좋게 태우고 있었고 불똥도 사방을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렸다. 그녀는 전혀 앞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차를 몰았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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