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꿰뚫듯 치솟았던 불길과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잿가루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샌디에고시와 카운티 주민들은 29일부터 서서히 ‘공포의 동굴’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엄청난 기세로 주변의 임야와 주택들을 활활 태우던 산불은 샌디에고의 고급 주택지 스크립스 랜치의 345동을 전소시킨 채 이날 80% 정도 진화됐다.
그래서인지 인적 드물었던 거리와 철시했던 스토어들은 29일부터 다시 평소 수준의 인파를 되찾았다. 샤핑센터에는 고객들이 북적이기 시작했고 도심지의 교통체증도 종전대로 돌아갔다. 수퍼마켓 앞의 파업 노조원들은 다시 피켓을 들었고, 샌디에고 해군기지 역시 정상업무에 복귀했다. 샌디에고시에는 27일 새벽 이후 새로 불에 탄 주택이 없었지만 주민들은 계속되는 남가주의 산불피해 소식과 특히 카운티 내 줄리안 지역 소방관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지난 28일자 뉴스에 심란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그러다 29일에 산불 대부분 진화라는 발표가 나오자 마치 피난처에 숨어있다 나온 사람들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 시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주민들의 삶이 충족되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교통체증이 생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의 시련을 당한 주민들의 분위기는 종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인파가 많은 백화점이나 식당 등에서도 모두들 속삭이듯 대화하는 등 아직 웃음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일부는 9.11 테러가 난 직후의 분위기 같이 모두들 감정을 억제하고 조심조심 행동하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오랫동안 소식을 교환하지 않았던 친지들이 다투어 전화를 하고 방문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 바쁘다고 한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인간관계의 소중함이 되살아난 것 같다고 샌디에고의 평화정보센터의 디렉터는 진단했다.
샌디에고 시장 딕 머피도 산불 이후 처음으로 이날 연쇄 기자회견을 갖고 샌디에고시와 카운티에서 사망한 주민들에 애도의 뜻을 표시한 후 산불 피해자의 재기를 돕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약 30여명의 각 종교 지도자들과 한시간에 걸쳐 모임을 갖고 오는 2일 희생자를 위한 추도식과 샌디에고 전체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기도 모임을 갖기로 했다.
또 주택전소 피해가 큰 스크립스 랜치와 티에라 산타에서 피해자가 재건축할 때 건축비를 면제해주고 연방재난관리국의 산불 피해자를 돕는 ‘원스탑 샤핑 사이트’를 커뮤니티 센터에 설치할 것이라고 아울러 발표했다.
학교는 아직 휴교상태지만 학부모들은 어린 학생들이 지난 며칠간 겪었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학교에 모였다. 또 극장에는 가족동반 관람객들이 갑자기 많아졌는데 가장 인기 있는 상영물은 아동용 영화나 코미디물. 그동안의 침체된 기분을 털어 내려는 주민들의 노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한편 샌디에고 파드레스와 월마트 샤핑 체인도 어린이 대상 핼로윈 파티를 성대하게 개최하기로 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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