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16살 여름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내 고향 진천 초평 저수지 수문장으로 계시던 친척집을 방문했었습니다. 그 날 밤 달빛은 물과 숲의 속살이 보일 만큼 밝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오래 전 단옷날 꽃배 놀이하다 죽은, 강 건너 무덤 속 처녀들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울긋불긋 채색 옷으로 단장했던 시골 처녀들의 시신 30구를 건져놓고 보니 강 언덕에 예쁜 꽃이 피었던 것 같았다나요. 밤벌레 발자국 소리에도 숲이 움찔댈 정도로 괴괴했던 밤.
어머니께서는 윤심덕의 사의찬미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그 노래가 꽃배놀이 하던 처녀들의 웃음소리와 섞여 수문 저 너머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혼 후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은 캄캄한 속의 나날들, 고개 떨구고 어둠 속을 걷던 어느 날, 문득 그 어둠 속에 달빛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희망으로 가슴이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어둠이 절망만은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달빛은 구석구석 어둠을 떠내고 있었습니다.
결혼 21주년 맞은 올 여름 부모의 따뜻한 시선을 먹으며 착하게 자라 준 아이들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아우터 뱅크로 휴가를 갔었습니다.
바닷가 작은 캠프장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려는데 해송에 걸린 둥근 달이 나오라고 우리 부부를 어찌나 유혹하는지 밤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가 그만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인물은 배우 근처도 못 가는 남편이 근사한 테너로 내 귀에 속삭였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당신이 제일 좋아. 착한 아이들과 당신이 있어 정말 행복해. 만약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과 결혼 할거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을 때 주검 앞에서 후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도록 우리 행복하게 살아요, 나도 당신이 제일 좋아요.”
아마 그 날 밤 우리는 달빛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밤새도록 바닷바람은 우리의 작은 천막을 무너뜨리려 갖은 협박을 다 했으나 우리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우리보다 더 커버린 아이들과 비좁게 누웠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냥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언제쯤 내게 또 달빛의 추억이 만들어질까 기다림이 있습니다. 캐롤라이나 달빛이 내 삶에서 언뜻언뜻 비췰 때마다 다시 한번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달빛이 있는 한 삶의 어둠이 내린다해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달빛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희망의 불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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