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호크/북한 인권 연구원
북한 수용소 문제를 연구하는 동안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는 아직도 정치범 수용소에 상당수의 종교인이 수감돼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탈북자 중 기독교인과 접촉이 있었던 사람은 가혹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전 이후 북한에서 많은 숫자의 기독교인 처형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72년 김일성은 “공산사회를 만드는데 종교인을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집사 이상의 기독교인을 재판에 부쳐 처형했다. 일반 신도 가운데 죄를 뉘우친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줬다. 그렇지 않은 자는 수용소에 보내졌다”고 말했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여덕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강철환 탈북자는 자기가 처음 들어갔을 무렵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노인이었고 나올 때쯤은 거의 죽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90년대 중반이후 기근으로 30만에 이르는 북한 인들이 중국으로 넘어 갔고 거기서 목사를 비롯한 탈북자 지원 관계자들을 만났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이 선교사와 만났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하며 처형이나 중형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탈북자들이 이를 부인해도 온갖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온성에서 2명의 여성 탈북자가 기독교 신자가 된 사실을 털어놓자 즉시 끌려가 처형됐다.
북한 주민이 기근 때문에 중국에 갔으면 6개월 정도 징역형에 처해지지만 선교사와 만난 혐의가 인정되면 장기 수용소나 극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단기형에 처해지더라도 질병과 식량부족, 과중한 노동으로 죽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죄는 세계 인권 선언과 북한이 가입한 국제 인권 규약이 보장한 “떠날 자유”를 행사한 것과 종교인을 만난 것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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