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내 유년시절. 집안의 최고 어른이신 조모께서 그때 까진 그림자나마 남은 반상의 척도로, 그 댁이 여름에 얼음을 드시는가가 첫 번 째 관건이었는데, 이는 석빙고 얼음을 하사 받을 수 있는 곳은 왕가를 위시해 특정한 집안이 국한되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 째가 가양주 빚는 내력을 보셨으며, 그 다음이 장과 김장담그는 솜씨를 보셨다.
가양주는 집에서 담그는 술이다. 일제의 전매법으로 인해 밀주라는 오명을 쓰고 명맥이 끊어졌으나 예로부터 집안의 대소사에는 물론이고 집안 어른의 상차림에는 언제나 반주로 드시도록 준비하는 것이 법도 있는 집안의 예의였다. 그래서 딸을 시집 보낼 때에는 요리, 의복솜씨와 함께 가양주 한 두 가지 담는 법을 배워 가는 것이 필수였다.
어디 그 뿐이랴, 사람 살아가는 기본적인 네 가지 예의인, 관례, 혼례, 상례, 제례의 통과의례에서도 술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인이 되었음을 알리는 관례 때, 사당에 모신 조상에 올리는 한잔 술은 가문을 이어갈 책임과 의무가 막중함을 인식하고, 나를 있게 하여준 조상들과의 약속의 술이며, 또한 관례 후 일터에서 받아 마시는 농주 한잔은 이제 확실한 한사람의 품값을 받는 두레의 일원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술이기도 했다.
혼례 때 마시는 술은 특히 합환주라 하여, 부부의 연을 맺는 부부에게 백년해로하라는 사연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신이 인간에 준 자손번영이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성서에서도 예수께서 첫 번 째 행하신 기적이 혼인집에서의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떠나 혼례 때 술의 중요함을 재삼 음미하게 된다.
상을 당해 망자에게 올리는 술 한잔엔, 이제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며 어찌 한 점 회한이 묻어 있지 않겠으며, 제사 후 음복하는 술에는 조상들의 음덕에 감사하고 나 역시 언젠가는 그들 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겸허함을 배우는 철학의 잔이다.
술은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나 우리와 함께, 불가에서 말하는 고해의 바다를 동행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과 가까운 술을 발효와 부패로 뭉뚱그려 매도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술도 못 먹는 바보라거나 술도 모르는 숙맥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술도 음식이므로 사람마다 각자의 선호도가 있고, 과음의 폐해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술에 국한 된 것만이 아니다. 모든 일에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은 당연한 세상 이치 아 닌가?
술을 모르고서야 어찌 인생을 논하고 우정을 말하며 사랑을 이야기할 것인가?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가 듯이 가는 나그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힘들고 건조한 이국의 이민생활, 하지만 육신이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마음 마저 돌아 갈 수 없으랴? 가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