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빌 클린턴이 자서전 ‘My Life’를 펴냈을 때 사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은 있었지만 여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8년간(1993~2001년)의 치적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아는지라 들먹거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가 10대에 백악관 방문, 케네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던 계기는 그가 말하듯 대통령에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전기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일화다.
내가 아는 미국은 영웅들의 나라다.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고 없으면 만들어내서라도 열광하게 한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정서적 차이를 보고 있다. 5,000년 장구한 역사를 뒤돌아보면 200년 역사의 미국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더욱 많은 영웅들이 숭앙을 받을 만도 한데 있는 영웅을 숭앙하기보다는 격하시키고 폄훼하고 역사에서 말살시키려는 행위도 서슴지 않음을 보고 있다.
지구 저 쪽과 이 쪽에서 젊은 시절을 살은 지역적 차이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과 나와의 공통점은 케네디 대통령을 영웅시하는 그 관점에 있다. 내가 케네디를 아는 만큼 케네디와 동시대를 지구 저쪽에서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박정희 대통령을 그는 알고 있느냐 묻고 싶다. 이것은 클린턴에게 들려주고 싶은 박 대통령과의 우연한 만남의 이야기다.
1968년 여름 학생회를 맡고 있던 당시 한 달에 한 번씩 의대 진료반이 매월 거여동에 판자촌 철거민들을 위한 진료 지원금 수령 차 청와대를 방문, 육영수 여사를 만났다. 육여사는 이 자리를 통해 지원금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육여사와 대화 도중이었는데 누군가 국수 사발을 들고 나오지 않는가. 원래 국수를 좋아했던지라 양은 모자라는 듯했지만 더 달라 소리는 못하고 참말이지 그렇게 맛있는 국수는 먹어본 적이 없다. 더욱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다. 대통령이 지금 집무실에 있는데 아무 스케줄이 없을 듯하니 대통령을 한번 만나보라지 않는가. 바로 옆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커다란 집무실 책상에 묻힌 듯이 앉아있던 대통령은 첫 인상이 시골 농부 같았다면 누군가 나무랄지 모르겠다. 햇볕에 그을었는지 새까만 얼굴에 조그만 체구의 대통령은 절대권력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동생이나 후배를 대하듯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연설을 들을 때와는 달리 조용히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옆방으로 가 보자고 했다. 옆방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황판이 있었다. 군대에서 지휘관 앞에서 브리핑하는 포인터(pointer)를 쥐고 진척상황을 하나 하나 설명해 주지 않는가.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설명도 설명이었지만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가 일개 학생에게 선생님처럼 설명해 주는 그 모습에서 대통령으로서의 고독을 보았던 것이다. 정쟁에서 권좌에서 얼마나 진솔한 대화에 굶주렸으면 그리도 열심히 지도판을 가리키면서 설명을 통한 ‘말’에 대한 그리움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1961년 혁명 당시 국민소득 87달러에서 그나마 지금 1만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박 대통령은 영웅으로 각인되어 있고 대통령의 인간적 고독과 청와대의 국수 맛은 죽는 날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방 준/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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