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해외 이주 역사는 1860년대부터 시작된다. 흉년이 들자 농토를 찾아 간도, 연해주 등지로 넘어간 함경도 사람들이 그 효시다.
한국인의 미주 이민은 1903년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사탕수수 농장’ 이민으로, 한 무리의 한인 이민 집단은 하와이에 뿌리를 내렸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의 한인 이민은 오늘날 전 세계 최대 해외동포 집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 다른 이민 집단은 멕시코에 정착했다. 이 멕시코 이민의 후예는 그러나 오늘날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일제 36년, 그리고 해방 후 수십 년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아무도 신경을 안 쓰고 있는 동안 국제결혼 등을 통해 흩어진 탓이다.
오늘날 해외의 한국인 수는 700만에 가깝다. 남북한 전체 인구의 10%, 남한 인구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이 해외 동포의 모국에 대한 발전 기여도는 보통 큰 게 아니다. 한국이 어려울 때는 물론이고 해마다 50억달러 이상을 한국으로 송금하고 있다.
해외 동포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 초기에는 기민(棄民) 정책을 취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해외동포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던 것. 이해가 된다.
해외동포 문제에 보다 본격적 관심을 쏟기 시작한 건 김영삼 정부 때다. 그 관심은 재외동포법 추진으로 구체화 됐다. 김대중 정부 때에도 재외동포재단을 만드는 등 해외동포 문제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해외동포 문제에 그러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소홀할 뿐 아니라 무관심하다. 그 동안 안팎에서 나온 지적이다.
그 형식주의에, 무관심을 상징하는 에피소드가 지난 6월 서울서 열린 세계 한인회장단대회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270여지역 한인회장들이 한국 정부 초청으로 모였다.
정세현 장관이었던가, 당시 통일원장관은. 하여튼 초청자인 장관은 전 세계에서 모인 한인회장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다. 그리고 바로 자리를 떴다.
이름하여 전 세계 한인회장대회다. 그 대회가 그런데 초청한 주인은 사라지고 초청 받은 객들만 남아 밥이나 먹는 이상한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LA를 방문했다. 그리고 중요한 약속을 했다. 미국 시민권자를 징집하는 병역법 불합리를 시정하겠다. 해외동포 참정권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
대통령이 직접 한 약속이다. 얼마나 융통성을 가지고 실무진들이 그 약속을 정책으로 구체화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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