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가정의 삶은 대체로 핵가족 중심에다 분주한 생활들이어서 정신적으로 무미건조하고 황폐해지기 쉽다. 가족이 있으되 서로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고 친척이 있으되 모두들 떨어져 살다 보니 이래 저래 만족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같으면 그래도 가족들이 서로 만나는 시간이 많이 있고 친척들도 가까이 살면서 자주 연락을 취하고 자리를 같이 하며 지낸다. 그러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같이 의논하고 서로 힘을 모으고 하면서 사는데 이민와 살다보니 자연히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우리 이민가정의 현주소다. 그래서 식구들이 많아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걸 보면 사람들은 모두 ‘다복한 집안’이라며 부러워한다. 한인사회에도 보면 종종 이런 집안이 눈에 띄어 그때마다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가정의 달에는 신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어 건강을 회복케 한 아버지 배영한(42)씨의 집안 스토리가 너무도 다복하고 건강해 보여 주변에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의 가정은 플러싱에 거주하는 배혁곤(90). 배경자(83)씨의 아들, 딸 8남매 집안이다. 배씨 의 가족은 어릴 때부터 귀가 안 들리는 상태에서 아직 미혼으로 동생과 살고 있는 큰 아들 철부(64)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해 뉴욕에서 서로 도우며 어려운 이민의 삶을 성공적으로 꾸려가고 있다. 집안의 장녀인 배경자(65)씨와 사위 나영식(66)씨는 슬하에 1남3녀를 두고 뉴저지에 살고있고 둘째 철부씨에 이어 셋째인 배이순(58), 정민식(65)씨는 1남4녀와 함께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7년전부터 그로서리를 운영하고 있다.
또 넷째인 차남 배주한(53), 배선복(50)씨는 플러싱에서 1남1녀와 함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 철부씨를 모시고 산다. 롱아일랜드 햄스테드에서 야채, 그로서리 가게를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다섯째인 3녀 배계자(50)씨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플러싱에 살고 있다. 그는 문광민(50)씨와 결혼해 살고있는 여동생 배경숙(47)가 지난해 인수해 운영하는 잭슨 하잇츠 소재 네일가게에서 동생과 함께 네일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곱째로 3남인 배인한(45), 배옥희(45)씨 부부는 슬하의 1남1녀와 함께 롱아일랜드 우드미어에 거주하며 18년째 자마이카에서 야채, 그로서리 가게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8남매 중 막내인 배영한(42)씨는 앞서 거론된 바와 같이 얼마 전 막내아들 세영(9)군에게 신장을 기증해 건강을 되찾게 한 화제의 주인공이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이민와 버룩 칼리지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한국에 나가 현재의 아내 배선희(41)씨와 결혼해 세 아들을 두고 롱아일랜드에 살고 있다.
영한씨는 브롱스에서 홀세일만 15년째로 현재 웨스트 인디언 그로서리 도매상(P. East Trading Corp.)을 아주 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한인사회에 요즘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부인회로부터 그는 올해의 ‘훌륭한 아버지’로 선정됐다.
3대가 뉴욕에서 같이 어우러져 살고있는 이 집안은 가족만도 손주에, 증손주까지 자그만치 40명에 이른다. 이런 대가족이 미국에서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큰 딸 배경자씨가 제일 먼저 미국에 이민온 것이 계기가 됐다. 이어 어머니 배향원씨, 아버지 배석곤씨가 잇따라 초청돼 오고 연이어 10년 전까지 동생네 가족들을 차례로 초청, 이민 생활에 합류했다.
배씨네 집안은 남달리 가족간 우의가 있고 화목과 단결이 잘 된다. 그 바탕은 미국생활이 까다로워 서로 방문하기도 쉽지 않은 점을 감안, 한 달에 한번씩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계를 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부인들이 만나 음식을 같이 만들고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집안의 대소사를 논의하면서 돕고 하다 보니 저절로 가족애가 생겨나더라는 것이다. 배씨네 8남매는 또 어머니날, 제삿날, 추석, 설날, 성탄절 같은 날은 물론, 생일이 있을 경우 어김없이 만나 웃음꽃을 피운다. 이외에도 연 1,2회씩 온 가족이 야외로 나가 우애를 다지고 심신을 단련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배씨 가족은 외롭지 않고 만나서 다진 화목과 결속력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의지하고 협조해서 모두들 큰 어려움 없이 잘 살아나가고 있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아이들도 큰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배씨 집안의 가훈은 크게 대단한 것이 없다. 그저 남에게 피해 안주고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제일로 생각한다. 영한씨 경우 그동안 아들이 아팠던 점을 생각하고 건강의 중요성을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강조한다. 특히 이번에 영한씨가 아들에게 신장 기증 수술을 할 때는 형제들이 모두 걱정해주고 위로해주고 해서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배씨네 집안은 서로 문제가 있으면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서로 돕기 때문에 훨씬 해결이 쉽다는 것이다.
배인한씨는 이런 집안 분위기에 대해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형제 많고 애들 많고 부모님 아직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셔 너무 좋고 크게 내세울 건 없지만 그런 대로 모두들 건강하고 다복하게 아버님, 어머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우애있게 살아가는 것이 제일 흐뭇하다고 말한다. 그의 큰 딸 수정양은 얼마 전 롱아일랜드 낫소 카운티에서 실시한 미술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해 온 가족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런 배씨네 집안 같이 형제와 가족간에 서로 돕고 웃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회의 귀감이 되고 아메리칸 드림을 진정으로 실현시키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주영 논설위원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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