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밤 10시 공영방송인 채널 13 PBS-TV에서는 13년 전 LA폭동과 그 이후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타리 영화가 방영됐다. 「젖은 모래」란 제목으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4.29 폭동 때 희생된 한인 대학생 이재성씨의 어머니 이정휘씨의 가슴아픈 사연으로부터 시작되어 1시간 동안 4.29 폭동의 과정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이 말해주듯 한인들이 4.29폭동 직후에 젖은 모래처럼 한 덩어리로 단결하였으나 일년이 지나자 젖은 모래가 모두 말라버리면서 흐트러지듯이 4.29폭동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그 날의 교훈이 잊혀져 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 불행했던 사태는 한인
이나 흑인, 라티노를 포함한 유색인종이 겪은 비극이라는 점에서 모든 유색인종이 젖은 모래처럼 단결하여 인종차별과 빈부의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다큐멘타리 영화는 뉴욕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독립 영화인 김대실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50이 넘은 나이에 영화를 시작하여 15년간 영화제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자신이 스스로 소재를 발굴하여 스토리를 구성하고 사재를 털어 경비를 조달하여 혼자 제작과 감독을 도맡아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번 영화를 만드는데도 PBS 방송에서 보조금 몇 천달러를 받았을 뿐 13만달러 가량의 제작비를 거의 자비로 충당했다. 이렇게 만든 영화가 PBS 방송에 방영된 것만 이번이 다섯번째이다.
김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목적은 영상매체를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미국의 주류사회에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 1990년 PBS 방송에 처음 방영한 작품이 「America Becoming」. 미국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이루어지는 것을 다룬 작품
이다. 이어 1992년 LA에서 4.29폭동이 발생하자 그는 이 폭동을 다룬 기록물을 「4.29」란 제목으로 제작했다.
이 기록영화도 PBS방송으로 방영됐고 대학등에서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김 감독의 세번째 작품은 사할린의 한인동포들을 다룬 「잊혀진 사람들」이다. 그는 1995년 사할린의 한인동포들이 지난 50년간 동토의 땅에서 고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살아오고 있다는 사할린 노인회장의 사연을 읽고 마음이 크게 감동했다. 그래서 5만달러의 빚을 얻어 사할린
으로 달려가 촬영해 온 것이 이 영화이다. 이 프로그램은 PBS-TV는 물론 한국의 SBS-TV에서도 방영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1998년 한국과 일본, 중국을 넘나들면서 일제시대의 정신대에 관한 영화를 「침묵의 소리」란 제목으로 제작, PBS에서 방영했다.
김 감독은 원래 영화인이 아니고 종교철학자였다. 1962년 유학으로 미국에 와서 보스턴대학교의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여 1969년 종교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여자 아이비리그에서도 유명대학인 매사추세츠의 마운트 홀리옥대학에서 9년간 교수생활을 했다. 고향인 황해
도에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월남한 그는 소녀시절부터 철학적 의문이 많아 그는 목사가 대답하지 못할 정도의 질문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는 이화여고를 거쳐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했고, 신학교 졸업 후에는 이화여고에서 영어와 바이블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9년간 대학교수로 근무한 후 1978년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정부의 문화기관에서 고위직 공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에는 뉴욕시로 자리를 옮겨 뉴욕시 예술원의 미디아 프로그램 디렉터로 3년간 근무했고, 1988년 10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영화인으로서 새출발을 시작했다.그가 영화를 하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지금은 이미지 시대이기 때문에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이 강연이나 다른 수단보다도 훨씬 강력해서 인생과 인간문제를 다루기에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다시 교단에 서고 싶을 때가 가끔 있었지만 영화를 통해 교단에 서는 것보다 자신의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영화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왔다고 한다.
그가 만드는 영화의 메시지는 한결같이 소외된 사람, 억압받는 사람, 빈곤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들에게 인간의 모습을 붙여 그들도 돈 많고 잘사는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외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사회에 백인우월주의가 너무 강
하고 몸에 배어 있어 백인들은 자신들이 유색인종을 깔본다는 사실 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한다. 또 유색인종들이 백인들의 농간에 휘말리지 말고 함께 단결하여 권익을 찾아야
하며 백인도 하나의 유색인종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처럼 유색인종과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있는 그의 남편은 스콧틀랜드계의 아이리쉬인 전형
적인 백인이다.
워싱턴에서 연방공무원을 하던 시절 역사학 교수 출신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남편은 연방기
관의 최고책임자의 직을 역임했다.
“그런데도 백인남편이 그런 영화활동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좋아하니 25년 이상 같이 살지 않았겠느냐”는 대답이다. 남편은 김 감독의 그런 활동에 대해 조언과 격려를 해주며 퇴직연금으로 생활하는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어 영화제작비를 보태주고 있다고 한다.김 감독이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는 쿠바에 있는 한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쿠바의 한인들은 1905년 멕시코로 이민간 1,000명의 한인 중 1921년 300명이 쿠바로 건너가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했는데 현재 3~4세의 한인계 700여명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겪은 애환을 동포적 입장에 다루었다는 그의 새 작품이 크게 기대된다.
김 감독은 사할린이나 쿠바나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지 한인을 만나면 같은 의식과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서 앞으로 한국과 한인에 대한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온 세상에 평화와 인권을 전파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도 많고 또 비용을
감당할 여력도 없어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러한 메시지가 널리 전파되고 한인 2세, 3세에 계승되어 이런 활동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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