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학창시절 다섯살 난 사촌 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콩쿠르에 참가시킨 적이 있었다. 두 달 남짓 평소보다 많은 연습을 시켰지만 2차 예선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고 꼭 다시 나오자며 어린 동생을 간신히 달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워지지 않는 모습의 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곡을 해석함이 남달랐고 무엇보다 적합한 톤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성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아이에게 영예의 일등상이 돌아갔다.
그 이듬해 우리는 피나는 노력으로 결선까지 갔고, 마침내 일등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나오는데 주차장 한구석에서 같이 울고 있는 어린아이와 엄마가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낙방생이었는데 옆을 지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짐을 느 꼈다.
일년 전 바하의 인벤션을 그토록 아름답게 쳐내던 그 아이였다.
미국의 음악교육은 1세 이전부터 다양하게 행해지는데, 악기교육은 대학부속 음악학교, 지역 음악학원, 개인 스튜디오 등을 거점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크고 작은 리사이틀도 자주 있는데, 앙상블 연주와 오케스트라 활동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곳의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에 민감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 있는 아이들은 극렬한 경쟁을 원동력으로 일등이 되길 위해 노력한다. 그 많던 신동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일부만 미국으로 유학 오지만, 그들 역시 이 곳 명문 음악원의 입학 허가를 모두 받지는 못하는 이유가 그들의 테크닉과 기교에 있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학생과 부모들은 거절 사유를 잘 이해하지 못 한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그의 삶의 철학이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므로 나의 마음에 상처 남기지 않는다’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음악교육 목적 중의 하나를 다음과 같이 설정하면 어떨까? 악기를 잘 연주하게 되고, 다른 연주자와 훌륭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이루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하여, 상황 극복 능력을 기르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알게 되는 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
그러면 사라졌던 신동들이 자신의 삶을 자신 있고 진실하게 연주할 줄 아는 인생의 대가가 되어 돌아와 있음을 발견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정미진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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