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2의 도시 LA에 사는 것이 고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1994년 1월 17일 미 역사상 가장 큰 재산 피해를 낸 지진이 노스리지를 강타했다. 1992년 4.29 폭동의 타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LA 주민들은 새벽에 집밖으로 뛰어나오며 LA에 살아야 하는 불운을 탄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불로 벌거숭이가 된 산동네는 억수같이 내린 비로 산사태와 싸워야 했으며 몇 년째 계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모기지가 집 값보다 커지자 집을 버리고 나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장사는 안 되고 범죄율은 치솟고 인종갈등은 심화되고 “LA는 미국의 제3세계 도시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이 때가 바닥이었다. 1993년 백만장자 출신으로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던 리처드 리오단이 LA를 살려 보겠다며 시장 직에 도전, 당선됐다. 그는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비즈니스를 괴롭히던 각종 규제와 세 부담을 완화하고 경찰력을 증강, 치안을 확보했다. 1995년 닷컴 붐과 함께 미국이 호경기를 맞자 LA 형편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투자가들이 몰려들면서 부동산 값이 뛰고 범죄는 급감했다. 사람들은 다시 앤젤리노로서의 자부심을 되찾았고 2001년 리오단은 가장 인기 있는 시장의 하나로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미국 제1의 도시 뉴욕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전 세계 금융의 수도인 뉴욕은 70년대 들어 재정 악화로 파산을 선언해야 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연방 정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치솟는 범죄와 비즈니스 환경 악화로 주민과 자금의 엑소더스가 계속됐다. 1977년 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뉴욕은 약탈과 방화가 판을 치는 무법천지로 변했으며 70년대에 이곳을 빠져나간 뉴요커 수는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의 발길을 다시 돌이키게 하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가라앉는 미국’의 상징이던 뉴욕이 옛 영화를 다시 찾은 것은 1994년 연방 검사 출신 루돌프 줄리아니가 시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 그는 ‘깨진 유리창 하나가 살인을 부른다’는 범죄론을 신봉하고 있는 빌 브래튼을 경찰국장으로 임명, 사소한 범죄도 용납하지 않는 강경책을 폈다. 범죄율이 급락하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이 마련되자 돈과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포르노 극장과 마약 딜러들의 소굴이었던 타임스 스퀘어가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샤핑/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로 변하자 뉴욕 언론들은 ‘뉴욕의 르네상스’를 노래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보여준 줄리아니의 지도력은 온 미국을 감동시켰으며 그는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한 때 몰락했다 다시 일어선 LA와 뉴욕의 스토리는 어떤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리오단의 뒤를 이어 LA 시장이 된 제임스 한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공무원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 못했다. 지난 4년 간 LA가 호경기를 누리며 시 수입이 3억 달러나 늘어났는데도 그 대부분을 공무원들의 임금 인상에 써버리고 정작 필요한 경찰 증원은 손도 대지 못했다. 샌퍼낸도 밸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만 두려워 그 분리를 막는데 전력을 기울였을 뿐 정작 주민들이 왜 그러는 지를 살피는 데는 게을렀다. 이 분리안을 부결시키는 데 필요한 정치자금을 마구 모으다 선거법 위반으로 보좌관들이 조사를 받는 바람에 이미지만 구겼다.
LA 새 시장이 된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는 노동 운동가 출신이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도시의 번영에 비즈니스가 얼마나 중요하며 큰 기여를 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주 하원의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의외로 노조 편을 들지 않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닉슨이 중국과 수교하고 클린턴이 웰페어를 개혁했듯 노동 운동가였던 사람이 오히려 노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가 과연 선거 공약대로 모든 사람을 위한 큰 정치를 펼지 특정 계층과 집단의 이익만을 앞세우다 몰락할지 지켜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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