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람’이라는 명칭은 상식적으로도 미국시민을 뜻한다. 특정한 인종에 속했거나 특정한 민족 또는 국가의 배경을 가졌거나 특정한 문화적 속성들을 갖추어야 미국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을 갖는다는 생각은 몹시 그릇된 생각이다.
그런데 유럽계 백인 미국시민들 중에는 그들만이 이 나라의 당연한 주인이며 타인종 출신들은 이등시민밖에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있나 보다.
유색인종들에 대한 능멸감이 그들의 심중에 담겨 있으나 그러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기도 하고 그들의 양심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인지 그들은 그런 감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가 일수다. 예컨대 유색인종 출신들의 ‘사고방식’이 ‘미국사람들’의 그것과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한인들을 뜻함)의 사고방식이 미국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말은 그들 한인이 비록 미국시민일지라도 그들의 사고방식이 백인 미국시민들의 그것과 맞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미국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오만스럽고 모욕적인 뜻을 비친다.
‘사고방식’이라는 말에는 의미가 많아 조심스런 해석이 필요하다. 그 말은 우선 합리적 사고의 논리구조를 뜻할 수 있다.
남의 ‘사고방식’이 이상하다고 하는 말은 상대방에 조리 있게 추리하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비하하는 뜻을 나타낼 수 있다.
‘형식 논리적 차이가 없는 곳에도 다양한 인식 방법들이 있다. 관능적 경험이 충분한 증거가 되는 사실만을 믿겠다는 실증적 방법, 선험적으로 사상체계를 세우고 경험을 그 틀에 맞추려는 사변적 방법, 사고의 구조나 증거에는 관심이 없이 실존 상황에서 생기는 확신을 따르겠다는 직관적 방법, 가급적으로 사실판단과 이해타산의 조화를 꾀하는 실용적 방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방법들 모두가 각 동서 문화에 나타난다. 백인 미국인들은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하며 생활한다는 말은 거짓되다.
‘사고방식’이라는 말은 또 사고의 논리적 구조 또는 인식 방법뿐 아니라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정치이념, 윤리관을 포괄하는 신앙체계를 의미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말은 인간 정신의 구조와 습성과 내용을 의미하게 된다. 의식과 실천의 불가분 관계를 생각한다면 ‘사고방식’이라는 말은 결국 사람의 존재양태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의 사고방식은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정체성의 자각은 자존(自尊)의 필요한 바탕이다. 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고방식을 비방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남의 인권을 무시하는 사람이 자기 인권의 귀중함을 깨달았을 이가 없다. 인권은 사람들 모두가 사람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것이므로 남의 인권을 부정하고 자기 것만을 세울 수 없다.
‘한국사람들’은 이지적 판단을 감정으로부터 분리 못한다고 말하는 백인 ‘미국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사실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 전개되는 정치적, 사회 윤리적, 종교적 또는 신학적 갈등은 짙은 감정들과 강한 의지들이 충돌하면서 이루는 혼돈이다.
미국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구태여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이런 저런 비방의 대상이 되는 한인들이 그들을 비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가치판단이 전제하는 선입관과 그 표현의 오류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슬기와 노력이 필요하겠다. 그러한 노력의 효율적 방도로서 언론의 중요성이 절감된다.


김진태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학 철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