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상상초월 재난’
초기대응은 하늘과 땅
9.11때 같은 신속한 구조작업 안보여
흑-백·빈-부 갈등 등 미국의 치부 노출
9.11과 카트리나는 여러 점에서 닮았다.
두 가지 다 미국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재앙이었고 피해도 기록적이었다.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복구에도 여러 해가 걸릴 만큼 타격이 컸다. 무엇보다 초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통한다.
그러나 두 사건은 다른 점도 여러가지다.
우선 초기 대응이 달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9.11 직후 신속하게 진두지휘에 나섰고, 뉴욕시와 재난구조 당국의 움직임도 발 빨랐다.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재앙을 초래한 배후에 대한 응징도 즉각적이었다. 미국민들은 일치 단결했고, 세계도 미국을 한 목소리로 응원했다. 카트리나 때는 이런 신속하고 일치된 대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부시 대통령은 휴가를 보내다 뒤늦게 복귀해 지도자로서의 자질까지 시비에 올랐고 지방 정부, 특히 루이지애나주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많은 주방위군이 이라크전에 나가 있어 이재민 구조가 늦어졌고 치안 유지도 어려웠다. 초강대국 미국이 ‘이 정도 수준 밖에 안되느냐’는 자조의 소리와 함께 책임논쟁이 불거졌다.
두 사건이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대응과 파장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두 사건의 성격이 다르다는데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9.11은 외부의 도전이었다. 초강대국 미국도 외부 세력에 의해 심장부를 공격받을 수 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하루 아침에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게 9.11이 미국인들에게 준 교훈이었다.
이런 외부적 도전에 미국은 정면으로 맞섰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지난 4년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잇따라 벌였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산’을 더욱 드높이 주창하고 조국안보부를 만들어 치안을 강화했다.
미국의 노선에 이견을 나타내는 나라들과는 갈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의 건재와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그라운드 제로’ 재건사업도 시작됐다. 9.11식 대응은 말하자면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한 강대국식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카트리나는 미국에 내부적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카트리나 재앙을 겪으면서 흑백과 빈부 갈등, 이라크전을 둘러싼 국민적 이견 등 미국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재해에서는 흑인 인구가 70% 되는 뉴올리언스가 집중 타격을 받았고, 차가 없어 다가오는 재난을 알면서도 대피하지 못한 빈민들이 희생자가 됐다. 피해자가 흑인들이었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느렸다는 주장과, 약탈행위를 둘러싼 해석 차이는 미국 사회에 아직도 치유하기 힘든 흑-백 갈등이 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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